국정원 前직원은 왜 흘렸는지…경찰 조직적 은폐엔 윗선 없는지…정작 밝혀야 할 의문점은 답 못내
전지성 사회부 기자
요원 70여 명을 동원해 인터넷에 ‘3류 댓글’이나 달아온 국정원, 수사 내용 은폐라는 전근대적 행태를 보인 경찰 수뇌부…. 검찰 수사팀이 밝혀낸 두 권력기관의 모습은 한심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검찰도 마찬가지다. 수사 과정에서 온갖 잡음을 일으키더니 수사 결과 발표 내용마저 과잉과 미달이 섞여 있다.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국정원 직원의 댓글을 확인하고도 은폐해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선거에 개입하려 한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이 밝힌 혐의가 사실이라면 당연히 드는 궁금증은 김 전 청장이 스스로 한 일인지, 지시한 ‘윗선’이 있었는지 여부다. 검찰은 이 의문에는 답을 못했다.
반대로 꼭 필요한 내용인데도 수사 결과 발표에 충분히 언급되지 않은 것도 있다. 국정원 전·현직 직원 김모, 정모 씨는 무슨 이유로 내부 기밀을 넘겨 민주당을 도운 걸까. 국정원 댓글 사건의 본류는 아니지만 이 역시 반드시 밝혀졌어야 할 대목이었다. 김 씨는 지난해 4월 총선 때 경기 시흥갑 민주당 예비후보로 나선 바 있다. 대선을 앞두고는 모 후보의 경선캠프에서도 일했다. 지난해 11월엔 민주당 ‘국기문란진상조사특위’ 위원으로 활동하며 문재인 후보 캠프에 합류해 본격적으로 선거운동에 관여했다. 당시 현직이었던 정 씨는 여직원 김모 씨를 미행까지 해 가며 그의 신상 정보를 유출했다. 파면되자 국정원 내부 전산망에서 ‘원장 지시·강조 말씀’ 문건 54건 중 42건에서 자극적인 부분만 손으로 베껴 민주당에 넘겼다. 자신의 인생을 걸고 불법을 저질렀으니 마땅한 보답이 있었을 개연성이 크다.
하지만 검찰은 이들이 민주당 측과 어떤 거래를 했는지 밝혀내지 못했다. 민주당 관계자들을 불러 조사했지만 부인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흔히 수사를 칼로 악을 찌르는 일에 비유한다. 선배 검사들은 “칼에는 눈이 없다”고 후배들에게 말해 왔다. 칼에는 눈이 없어 그 주인을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수사에 대해 자신감이 지나칠수록 칼을 쥐고 있는 검사 자신도 찔릴 위험이 높다는 가르침이다. 지나침과 모자람이 뒤섞인 이번 수사 결과는 국민적 호응이 높을 대목과 그렇지 않을 부분을 안배한 느낌이 든다. 검찰이 수사 결과가 세상에 미칠 파장까지 감안해 수사했다면 이는 위험한 자신감 아닐까.
전지성 사회부 기자 vers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