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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상륙작전 이끈 ‘팔미도 등대’ 현충시설 된다

입력 | 2013-06-17 03:00:00

1903년 세워진 국내 최초의 등대




1950년 9월 14일 오후 8시. 연합군 사령관 더글러스 맥아더는 기함(旗艦) ‘마운트 매킨리’에서 최규봉 미 극동사령부 한국연락사무소(KLO·일명 켈로·대북첩보부대) 부대장에게 미 장교 3명을 포함한 6명을 이끌고 가 팔미도 등대의 불을 밝힐 것을 명령했다. 새벽 상륙작전의 길잡이를 위해 팔미도 등대(사진)의 불빛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켈로 부대원들은 주둔지 영흥도를 떠나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팔미도에 도착했다. 북한군과 치열한 교전 끝에 등대를 점령한 후 자정 무렵 팔미도 등대의 불을 켰다. 이어 “상륙하라. 전군 진격하라”는 명령이 7개국 7만5000여 명의 병력을 실은 261척의 연합군 함대에 일제히 내려졌다. 연합군은 팔미도 등대의 불빛을 따라 영흥도와 무의도 사이의 해로를 타고 15일 새벽 6시 월미도 해안에 상륙했다. 성공 확률 5000분의 1이었던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은 6·25전쟁의 전세를 뒤바꿀 수 있었다. 팔미도 등대가 없었다면 인천상륙작전도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 팔미도 등대가 국가현충시설로 등록된다. 16일 국가보훈처 인천보훈지청에 따르면 올해 하반기에 있을 현충시설 심의위원회를 거쳐 팔미도 등대를 국가현충시설로 등록할 방침이다. 1903년 6월 1일 국내 최초의 등대로 세워진 팔미도 등대는 2003년 새 등대가 들어서며 불이 꺼졌다가 110주년을 기념해 5월 31일∼6월 1일 점등을 했다.

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