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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사업 충돌했다하면 평균 4년 끌어… 합의 해결 1건뿐

입력 | 2013-06-17 03:00:00

[갈등 대한민국, 해법을 찾아라]<상> 최근 10년 10대갈등 분석해보니




국무조정실이 4월 대통령에게 보고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갈등관리과제 69개를 보면 전국 대부분이 갈등경보의 영향권에 놓여 있다.

▶본보 5월 24일자 A4면 밀양… 안양… 대전… 지자체 4곳중 1곳이 ‘갈등 활화산’

각종 정부사업을 둘러싼 갈등으로 ‘장기 천막농성’과 ‘고공농성’이 진행 중인 곳도 5월 31일 현재 전국에 걸쳐 30곳에 이른다. 이들의 농성 기간은 평균 340일에 이르고 있다. 서울 여의도 국민은행 앞에서 비정규직 교수들이 벌이는 농성은 4년 7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동아일보는 전국에서 터져 나오는 갈등의 해결이 선진국에 진입하는 마지막 문턱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에 따라 성균관대 갈등해결연구센터와 공동으로 최근 10년 동안 우리 사회를 뒤흔들었던 대형 공공갈등 10개를 선정해 심층 분석했다.

10대 갈등 중 부안 방사성폐기물처분장 사태, 주한 미군기지 평택 이전, 사패산 터널, 천성산 터널, 행정수도 이전 등 5개 갈등은 마무리가 된 사안들이고, 4대강 사업, 제주해군기지 건설, 동남권 신공항 건설, 공군기지 이전, 밀양 송전탑 건설 등 5개 사안은 여전히 진행형인 것들로 올해 국무조정실이 관리하는 갈등과제에도 포함돼 있다.

국가가 국책사업을 하는 데 있어 갈등은 불가피하지만 한 번 시작된 갈등이 마무리가 안 된다는 게 문제다. 분석에 따르면 10대 공공갈등의 지속기간은 평균 4년2개월에 이른다. 제주해군기지 건설은 2007년 6월 국방부가 해군기지 건설 터로 강정마을을 결정한 이후 6년째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강영진 성균관대 갈등해결연구센터장은 “우리나라의 갈등 양상은 선진국형인데 갈등 해결 방식이나 인식은 후진국에 머무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에는 민주화와 보혁갈등 등 사회 가치 갈등이 주된 국가적 갈등이었다면 지금은 주민들의 생활에 영향을 주고 환경이나 에너지 인식 등 정책적 사안이 복잡하게 얽힌 선진국형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하지만 갈등해결 방식은 정부의 공권력 투입에 따른 물리적 충돌이나 지루한 법정 소송으로 마무리되는 등 여전히 후진국형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 10대 갈등 중 4개 갈등사안의 경우 공권력이 투입됐다. 이해당사자 간 합의를 통해 갈등이 마무리된 건 대통령과 불교계의 직접적 타협으로 마무리된 사패산터널뿐이다.

동아일보는 3회 시리즈를 통해 갈등 해소를 위해서는 “정(正) 반(反) 합(合) 3박자가 맞아야 한다”고 제언한다. 국가는 국책사업을 시작할 때부터 잠재적 갈등 사안을 점검하고 이해당사자와 충분한 소통을 해야 하고(正), 반대를 하는 주민 시민단체 지방자치단체 등 이해당사자들도 대안을 찾는 협상에 적극 임하며(反),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도록 하자(合)는 뜻이다. 이를 위해 먼저 10대 갈등에 대한 분석을 통해 우리 사회 갈등의 공통점 5가지를 추출해 보기로 했다.
▼ ①정부 일방적 추진 →주민 반발 →③정치쟁점 되며 증폭 →④외부단체 끼어 장기화 →⑤소송 끝 강제조정 ▼

■ 10대갈등서 드러난 5가지 ‘불화공식’


① 정부의 일방적인 ‘DAD’ 스타일 행정운영

미국에는 정부의 일방적 업무추진 방식을 비꼬는 말로 ‘DAD(Decide-Announce-Defense) 스타일’이라는 말이 있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공표하면 시민들이 반발하고 뒤늦게 정부는 방어한다는 뜻이다. ‘아빠’라는 뜻의 ‘dad’는 행정의 가부장적 속성을 빗대는 말이기도 하다.

10대 갈등을 분석해보니 정책을 결정하고 공표하는 과정에 국민 의사를 수렴하는 절차가 부족한 정부의 ‘DAD 스타일’이 고스란히 발견됐다. 4대강, 행정수도 이전, 동남권 신공항 건설 등 대선 공약은 엄청난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을 철저한 타당성 없이 표를 의식해 공약하고 집권 후 밀어붙이다 갈등만 키운 경우다.

제주해군기지의 경우도 초기 소통이 부족했다. 건설되면 재설계가 어려운 특성을 고려하지 않았다. 강정마을 주민들의 유치 신청이 있었다지만 주민의 총론을 모았다고 보기 어렵다. 주민 여론조사에서 찬성률이 가장 높다는 이유로 강정마을을 해군기지로 최종 결정한 것은 입지 선정에 공정성을 확보하는 데 미흡했다는 비판이 나올 법하다.

주한 미군기지 이전은 1987년 대선 때 노태우 당시 대선후보가 공약한 사안이고, 천성산 터널은 1990년 천성산을 관통하는 현 경부고속철도 노선이 확정되면서 예고된 것이다. 그럼에도 2000년대 초까지 소통에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② 정부 vs 주민+시민사회단체 대결

10대 갈등 중 지방자치단체끼리 유치 경쟁을 벌인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제외한 9건이 민관 갈등이다. 관관 갈등이나 민민 갈등에 비해 민관 갈등이 두드러진 것은 대형 기피시설 유치와 관련된 것들이어서 주민들의 반발 강도가 크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정부, 해당 사업 지역의 주민, 사업에 반대하는 시민단체가 결합되는 형태로 진행된 갈등이 6개나 됐다.

민관 갈등이 커지고 있는 것은 시대적 흐름과도 관련이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임명직이었던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중앙정부의 정책에 잘 따랐다. 전문가 집단이 미약하고 국민들이 대형 국책사업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보도 적었다. 국토 개발과 관련해 갈등이 발생하면 곧바로 공권력이 개입해 초기에 갈등이 봉합됐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부터 환경, 지역, 인권을 강조하는 시민사회단체가 생겨나면서 국토 개발이나 시설 유치와 관련된 국책사업에 주민과 시민사회단체들이 전문적 지식과 정보를 바탕으로 경제적 타당성이나 환경 문제, 지역 균형발전 문제 등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③ 정책적 쟁점이 결합되면서 갈등 증폭

10대 갈등 중 기존 시설의 피해로 인한 갈등사례인 공군기지 이전을 제외한 9건이 주민들의 재산권이나 환경권뿐 아니라 정책적 사안이 결합된 것들이었다.

부안 방폐장 사태와 밀양 송전탑 건설 등은 국가 에너지 정책과 연결된다. 일부 환경단체들은 원전을 점차 폐쇄하고 신재생에너지를 확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한 미군기지 이전이나 제주해군기지는 안보와 직결되는 문제다. 제주해군기지가 미국의 전초기지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까지 제기되면서 보혁 갈등으로 확대되기도 했다. 행정수도 이전은 지방균형발전론과 수도이전반대론이 정면으로 맞붙은 사안이다. 사패산터널과 천성산터널, 4대강 사업 등 개발이냐, 환경 보전이냐를 둘러싼 갈등은 최근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사안이다.

④ 갈등을 부추기는 일부 시민단체

우리나라 갈등은 발생 건수보다 장기화가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가 1990∼2008년 공공갈등을 분석한 결과 발생 건수는 매년 큰 차이가 없었지만 누적 건수는 1990년대 연간 50건 안팎에서 2000년대 중후반에는 80∼100건으로 늘어났다. 한번 발생하면 장기화되는 것이다.

일부 시민단체의 영향도 그 이유로 꼽힌다. 2008년 단국대 안순철, 임재형 교수의 분석 결과 시민단체가 제3자로 공공분쟁에 개입했을 경우 215일, 당사자로 공공분쟁에 개입했을 경우 596일 등 분쟁 기간이 긴 것으로 나타났다.

의약분업 갈등 때엔 참여연대와 경실련이 중재 역할을 했다. 그러나 주한 미군기지 이전, 4대강 사업, 제주해군기지 등 사안에서는 일부 시민단체가 조정자가 아닌 당사자로 갈등의 한 축을 담당하며 갈등을 장기화시키는 경우도 많았다.

⑤ 물리적 충돌 거쳐 소송 끝에 결론


10대 갈등이 진행되고 마무리되는 과정을 보면 갈등만 키우다 사업 자체가 백지화된 경우가 왕왕 있다.

부안 방폐장 사태의 경우 당시 유치신청을 한 부안군수가 주민들로부터 폭력을 당하고 주민들 사이에선 형제끼리 반목할 정도로 큰 사회적 문제를 낳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용지 선정을 취소했다. 동남권 신공항의 경우 노무현 이명박 전 대통령 때도 지역 간에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였으나 임기 말에 가서는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며 백지화됐다. 지역민들은 여전히 공항 추진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법원 판결이라는 강제 조정으로 마무리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10대 갈등 중 천성산터널, 4대강 사업, 제주해군기지 등이 소송을 통해 대립 국면이 일단락됐다. 이런 경우 판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려 사회적 비용이 크다. 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가 1990∼2008년 공공갈등을 분석한 결과 법원 판결로 종료된 갈등의 평균 지속 기간은 971일로 전체 평균(497일)보다 2배 가까이 길었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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