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주눅 들었던 보수우파제 목소리 내기 시작한 건 균형 잡힌 사회 위해 바람직당한 만큼 갚겠다거나 박근혜 정부의 탄생을 과거회귀로 보고 폭주하면 안돼미워하면서 닮아갈 수는 없다
심규선 논설위원실장
묘하지 않은가. ‘개념 있는’ 선생님들이 교장을 ‘보수꼴통’이라며 밥으로 생각하고, 운동권 대학생들이 제멋대로 기준을 정해 마음에 안 드는 인사들의 대학 출입을 막고, 말 한번 삐끗 잘못한 보수 인사는 온라인에서 난도질당하는 걸 너무도 당연하게, 너무도 오래 보아왔는데 말이다.
‘전교조추방범국민운동’(전추국)과 ‘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공학련)의 활동은 주목할 만하다. 두 단체는 10차례 넘게 대법원 앞에서 전교조 명단 공개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고 있다. ‘한 놈’만 잡아 줄기차게 때리는 것은 예전 전교조의 전매특허였다. 단체도 그걸 알고 있는 듯하다. 성명서에서 “전교조에게 배운 대로 끈질기게 싸워 전교조를 역사의 법정에 세우겠다”고 한 걸 보면…. 진보와 보수의 공수(攻守)가 뒤바뀐 대표적 사례라 할 만하다.
최근 보수우파들이 이불을 걷어차고 밖으로 나오려는 것은 민주화 세력의 실패와 오만, 독주에 대한 반동 때문이라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지만, 스스로(S·E·L·F)에 대한 평가도 한몫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우선 두려움(Scare)을 너무 두려워해 왔다는 반성이다. 도덕적 우위를 주장하는 민주화세력과 맞상대할 경우 망신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지금 누리고 있는 작은 기득권마저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너무 오래 위축됐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자신들의 경험(Experience)을 너무 경시했다는 성찰이다. 과거세력이니 기성세대니 하는 말만 들으면 움츠러들었는데 보수라는 게 그리도 쓸모없는 거냐, 그건 아니지 않느냐는 자각을 하기 시작한 것 같다.
세 번째는 학습효과(Lesson)다. 민주화세력과 오랜 기간 지붕을 같이 쓰면서 그들의 말과 행동의 괴리를 보고, 사야 할 것과 버려야 할 것을 분별하게 됐다는 것이다.
보수우파의 이런 미묘한 변화는 양 진영의 싸움에 실제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나는 부정적인 전선(戰線)에서고, 하나는 긍정적인 전선에서다.
부정적인 전선의 대표적인 예가 ‘백년전쟁’과 ‘교학사 역사교과서 논쟁’이다. 민족문제연구소나 좌파진영은 이승만과 박정희 전 대통령의 시대를 부정하고, 나아가 현 집권세력을 흠집 내려 하고 있다. 없는 사실까지 들어 공격하고, 분위기를 몰아가 승리하려는 그들의 전술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고, 예전 같으면 쉽게 이겼을 것이다. 그러나 당하는 당사자나 보수우파 진영이 예전과 달리 침묵하지 않음으로써 그들의 시도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작지 않은 변화다.
긍정적인 전선에서 주목할 만한 예는 심상정 진보정의당 의원의 자기반성과 보수우파의 ‘임을 위한 행진곡’에 대한 옹호다. 예전에도 간간이 진보좌파 지식인의 자성이 없었던 건 아니나, 심 의원이 국회라는 공개석상에서 진보진영의 비민주성과 종북 논란, 노조 편향 등에 대해 포괄적으로 직핍하게 반성한 것은 큰 용기다. 보수언론의 칼럼니스트나 새누리당 의원들이 5·18 기념식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퇴출하지 말라고, 진정성을 갖고 목소리를 낸 것도 신선하다.
부정적 전선은 한 진영이 상대방을 공격하면 다른 진영이 반박하는 기존의 프레임이고, 긍정적 전선은 문제점을 스스로 드러내거나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새로운 프레임이다. 두 프레임에는 공통점도 있다. ‘주장’보다 ‘사실’이 중시받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진전이다.
심규선 논설위원실장 kssh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