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이전 6개월… 비효율 현장 가보니11, 12일 고속도 막혀 직원 15% 발묶여… 정책지연-예산낭비 결국 국민 피해로
6월 11일과 12일에는 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 1000여 명이 한꺼번에 지각하는 일이 벌어졌다. 경부고속도로에서 이틀 연속 교통사고가 나면서 극심한 정체가 빚어졌기 때문이다. 세종청사 7개 부처의 공무원 6400여 명 가운데 15%가 ‘집단 지각’을 하는 비상식적인 일이 이틀 연속으로 벌어진 것.
이 때문에 기획재정부 등 일부 부처는 월요일 아침마다 장관 주재로 열던 간부회의를 30분∼1시간씩 늦췄다. 간부회의가 늦춰지면서 실국별 일정도 차례대로 연기돼 이날 세종청사에 공무원들을 만나러 온 민원인들의 대기 시간도 길어졌다. 공기업 경영 평가 때문에 기재부를 찾았던 한 공기업 임원은 “오전에 업무를 보고 서울로 돌아갈 계획이었는데 회의 중이라고 해서 계속 기다리다가 오후 2시가 지나서야 겨우 만났다”면서 “일 마치고 서울에 도착하니 퇴근 무렵이더라”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19일 기재부 장차관실이 세종청사로 이주하면서 정부세종청사 1단계 이전이 마무리된 지 6개월이 지났다. 행정비용이 급증하고, 정부의 정책 결정 속도가 느려지는 등 행정비효율이 심각해지고 있지만 정부는 이를 개선할 대책을 전혀 내놓지 못하고 있다. 행정비효율에 따른 피해는 결국 행정서비스의 수요자인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고 행정전문가들은 설명한다. 행정효율을 개선한다는 명목으로 거액을 투자한 영상회의 운영실태를 보면 정부가 비효율을 개선할 의지를 갖고 있는지를 의심케 한다. 세종청사에는 55억 원의 예산을 들인 최첨단 영상회의장이 설치돼 있지만 영상국무회의는 6개월간 단 두 번밖에 열리지 않았다.
▼ 서울 오가느라 엔저대응 타이밍 놓치기도 ▼
공정위 일부 부서에서는 현장 조사 방식을 보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는 수도권 기업에 조사를 나갈 경우 조사관들을 하루 전 서울로 보내 하룻밤을 자게 한 뒤 조사당일 아침에 조사관들에게 대상 기업을 알려준다. 직원들이 세종청사에 있다가 조사를 가면 이동 시간만 2시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조사 나간다는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 소지가 크기 때문이다. 공정위의 한 국장은 “출동 시간을 줄이기 위해 직원들을 하루 먼저 올려 보내는데 그런 움직임이 기업으로 흘러들어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세종시 이전에 따른 비용도 만만찮게 불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16일 세종청사의 7개 부처에 따르면 올해 1∼4월 국내출장비 총액은 지난해보다 50% 이상 늘어 이미 40억 원에 육박한 것으로 집계됐다. 기재부(12억4800만 원)와 국토교통부(12억733만 원)는 이미 10억 원을 돌파했다. 올 한 해 7개 부처의 국내출장비만 100억 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통근버스(80여 대) 임차료로 책정된 예산 74억5300만 원도 거의 바닥을 드러냈다. 안전행정부가 한국능률협회컨설팅에 의뢰해 추산한 결과, 세종청사 이전에 따른 비효율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연간 4조7000억 원에 이르렀다.
‘아베노믹스’의 영향으로 엔화 가치가 급락하던 3월경 금융시장에서는 외환당국이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시장의 예상과 달리 기재부는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았다. 여러 사정이 있지만 엔화 약세 충격에 기민하게 움직여야 할 기재부 ‘환율 라인(당시 신제윤 1차관, 최종구 국제경제관리관, 은성수 국제금융정책국장, 유광열 국제금융심의관)’이 한자리에 모이지 못한 것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게 기재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이들 4명 중 2, 3명은 서울에 있거나 출장 중이어서 2월 중순부터 한 달 정도 세종시에서 다 같이 모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환율 관련 간부들이 늘 같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한자리에 모이지 못하면서 신속성이 가장 중요한 환율 문제에 제때 대응하지 못한 면도 있었다”고 말했다.
민원인들의 피해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정부 부처에 민원을 내려는 수도권 사람들은 하루를 꼬박 허비해야 한다. 정부 산하 공기업의 한 직원은 “세종시로 이주한 뒤 민간비효율 역시 행정비효율 못지않게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최준호 영남대 행정학과 교수는 “장관들은 대부분의 일정을 서울에서 소화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효율성이 유지되고 있지만 현장 실무진이 맡는 정책의 질은 이미 나빠지고 있다”며 “이는 고스란히 국민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이 같은 행정비효율 문제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 정부 출범 이후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세종시에서 국무회의가 한 번 열린 것 외에는 장관들이 모두 참석하는 회의가 모두 서울에서 열렸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행정비효율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황윤원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는 “공무원들이 자주 가는 국회, 서울역, 강남 같은 곳에 영상회의 시설을 마련해 언제든지 회의가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현모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은 “광화문이나 강남에 통합사무소를 만들어 모든 부처가 자유롭게 이용토록 하는 등의 보완책만 내놓아도 비효율 문제는 상당 부분 개선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종=유성열·황진영 기자 bud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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