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에 대한 친고죄 조항이 폐지돼 이제 피해자의 고소가 없어도, 제3자의 고발로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게 됐다. 또 강간죄의 대상이 확대돼 남성도 피해자 범위에 들어간다. 공소시효(범죄를 처벌·기소할 수 있는 시한)를 적용하지 않는 성범죄도 늘어나 13세 미만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강제추행과 강간살인 범죄자는 범행 시기와 관련 없이 끝까지 추적해 법의 심판을 받는다.
법무부와 여성가족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성범죄 관련 6개 법률의 150여개 신설·개정 조문이 19일부터 시행된다고 17일 밝혔다. 성범죄자 처벌 및 사후관리 강화,피해자 보호 등이 이번 조치의 핵심이다.
먼저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는 1953년 9월 형법 제정 이래 60년 만에 전면 폐지된다. 범죄가 성립해도 기소 등 처벌을 하려면 조건이 필요한 범죄가 있는데 친고죄(親告罪)나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가 대표적이다. 친고죄는 피해자나 고소권자가 고소해야 기소할 수 있으며 반의사불벌죄는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기소할 수 없다. 이런 점을 악용해 가해자가 피해자를 죽이겠다고 협박하거나 돈을 주고 합의하면 처벌을 할 수 없었다.
성추행 의혹을 받고 있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경우 피해여성의 고소가 없어 한국에서 수사할 수 없었지만 앞으로 똑같은 일이 벌어지면 수사가 가능하다. 다만 이번 개정안은 소급적용되지 않아 윤 전 대변인의 처분은 불가하다.
음주·약물로 인한 '심신장애'를 인정해 형량을 줄여주는 규정도 고쳤다. 음주나 약물로 인한 형 감경 규정을 대부분의 성폭력 범죄에서 배제해 예외 없이 엄벌한다.
이른바 '롤리타' 포르노 등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성범죄 처벌도 강화한다. '아동·청소년 대상 강간죄' 및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의 제작·수입·수출죄'에 무기징역형을 추가해 아동·청소년의 성을 사는 행위의 처벌 수위를 높였다.
형법상 유사강간죄 조항을 신설해 구강, 항문 등 신체 내부에 성기를 넣거나 성기, 항문에 손가락 등 신체 일부나 도구를 넣는 행위도 처벌한다.
성적 욕망의 충족을 위해 공중 화장실·목욕탕 등에 침입하거나 퇴거 요구에 응하지 않을 때 '성적 목적을 위한 공공장소 침입행위'로 처벌하는 규정도 생겼다.
일반 성폭력 범죄보다 가중처벌하는 '친족관계에 의한 강간 등'의 죄에서 친족의 범위를 기존 '4촌 이내의 혈족·인척' 외에 '동거하는 친족'도 포함했다. 이렇게 되면 예를 들어, 함께 사는 5촌 당숙에 의한 성폭행은 단순 강간이 아닌'친족관계에 의한 강간'으로 분류돼 가중처벌된다.
또한, 피해자 국선변호사의 지원 대상을 전체 성범죄 피해자로 확대하고 의사표현이 어려운 13세 미만 아동·청소년 또는 장애인 피해자를 위해 '진술조력인'을 두기로 했다.
성범죄자 사후 관리 및 재범 방지도 강화된다.
읍·면·동까지만 공개되던 성범죄자의 주소를 도로명과 건물번호까지 상세화하고 경찰 등이 고해상도로 찍은 범죄자 사진을 공개한다. 이밖에 2009년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난 혼인빙자간음죄는 이번에 폐지된다.
이번 법 개정은 지난해 '서울 광진구 주부 살인사건'등 잇단 강력 성범죄 발생을 계기로 국회 아동·여성대상 성폭력 대책특위와 법무부, 여성가족부 등 해당 부처의 협의로 이뤄졌다.
<동아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