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대한민국, 해법을 찾아라]<하> 협의 또 협의… 믿어야 풀린다
전국에 붙은 갈등의 불을 끄기 위해서는 갈등 해결 시스템 정비만으로는 부족하다. 정부는 일방적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는 의지, 주민과 시민사회단체는 반대만 하지 않고 공익을 위해 대안을 찾아보겠다는 성숙한 인식을 가져야 한다. 2007년 사패산터널 부근에서 열린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개통 기념식 행사 장면. 이날 행사에는 사패산터널 공사를 강하게 반대했던 불교계도 대거 참여했다. 이 갈등은 대통령이 불교계를 직접 설득하며 일단락됐다. 동아일보DB
성균관대 갈등해결연구센터는 공론(空論)이 아닌 공론(公論)이 되려면 공론화위에서 부처와 주민, 환경단체들이 터놓고 논의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 반대도 격(格)이 있다
환경단체들은 점차 원전을 폐쇄하고 신재생 에너지를 확충해야 한다고 하지만 원전 하나를 폐쇄하는 데 3200억 원이 소요된다. 우리나라 원전 23기를 다 폐쇄하려면 7조 원 이상 필요하다. 또 2011년 기준으로 원전을 중단할 경우 유연탄으로 그만큼의 전력을 충당하려면 추가로 15조 원, 액화천연가스(LNG)로 충당하려면 17조 원이 들어간다는 게 정부 추산이다. 이런 현실적인 부담도 감안해 함께 대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반정부 성향이 강해 국책사업마다 반대하는 상습 시위 세력도 있다. 예를 들어 4대강 사업 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에 참여한 단체와 제주해군기지건설저지 전국대책위원회에 참여했던 단체 중 각각 45%, 63%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국민대책회의에 참여했던 단체다.
○ 원전 정책, 터놓고 논의해 보자
성균관대 갈등해결연구센터는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에 ‘정책 다이얼로그(대화)’ 방식을 제안했다. 이는 사회적으로 논란이 되는 사안에 대해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고 정책 추진 방향에 대한 합의를 도출할 때 효과적인 방식이다.
1994년 미국은 백악관, 연방정부 부처, 지방정부, 개발업체, 환경단체, 과학 전문가 등 50여 명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개발 정책과 생태계 보호 간의 충돌을 둘러싼 향후 정책 방향에 대해 함께 대화하고 연구했다. 2년에 걸친 연구 끝에 이 협의체는 정부의 환경-산업-개발정책에 적용할 생태계 관리 원칙을 정하고 생태계 파괴를 막기 위한 민간 기업 유인책에 대해 합의를 이뤄 냈다. 향후 개발 정책에 있어 환경단체와의 분쟁을 줄이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믿어야 풀린다
미국은 시행령, 시행규칙을 제정하거나 개정하기 전 정부 부처가 마련한 안을 두고 그 법규의 영향을 받는 업계 단체 지방정부 등 이해 당사자, 제3의 전문가들이 모여 쟁점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고 문안까지 함께 작성하는 ‘협상에 의한 법규 제정’(NR·Negotiated Rulemaking) 방식이 발달돼 있다. 식약청 고시로 불거진 천연물 신약 처방권을 둘러싼 한의사와 의사 간의 갈등은 NR를 통해 사전에 예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 선진국에서는 전통적인 분쟁 처리 방식인 중재나 조정보다 갈등 해결 전문성을 지닌 제3자가 당사자들이 스스로 합의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중조(仲調·Mediation)’ 방식을 유용하게 활용하고 있다. 1974년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 근처 댐 건설을 둘러싸고 15년 동안 지속됐던 갈등의 경우 찬반 양측 대표 12명이 4개월간 치열한 워크숍을 통해 스스로 풀었다고 한다. 대표적인 ‘중조’의 성공 사례다. 이후 중조 방식이 확산됐는데 공공갈등 합의 성공률이 80% 이상이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그런 선진국 방식이 통하겠느냐는 우려가 앞서는 것이 현실이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