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은 역사에 관심 없고 학계는 명칭 놓고 이념 전쟁“일부 세력, 진실 은폐하고 있다”6·25 겪은 세대의 분노… 역사교육 강화에 앞서 객관적인 수업이 선행되어야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이로부터 40년 안팎의 세월이 경과한 오늘날 젊은 세대들에게 6·25전쟁은 더욱 흐릿한 안갯속의 존재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 학교에서 역사 수업을 받거나 대중문화를 접하면서 학습 또는 상상을 통해 6·25를 이해하고 바라볼 뿐이다. 1990년대 이후 6·25전쟁이나 북한을 소재로 한 영화 가운데 북한을 우호적으로 다루거나 연민의 대상으로 접근하는 작품들이 많아졌다. 이념적 성향이 강한 일부 영화인들이 우리 사회의 반공이데올로기를 무너뜨리기 위해 의도적으로 제작을 해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실이라면 6·25에 대해 백지 상태인 청소년들의 의식을 선점하기 위한 정지 작업이다.
6·25를 경험한 세대들은 이런 현실에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 홍익대 총장을 지낸 경제학자 심상필 씨는 ‘나의 6·25’라는 책을 펴낸 바 있다. 그는 ‘한때 시중에서 상영된 영화나 문학작품 가운데 남과 북은 형제인데 미군이 양민을 학살했다는 것을 알리려는 듯한 작품이 꽤 있었다’면서 ‘진실을 은폐 조작하려는 우리 사회 일부 세력의 횡포를 참기 어려워 사실을 알리기 위해 책을 썼다’고 밝혔다.
다음 달이면 6·25의 포성이 멎은 지 꼭 60년을 맞는다. 이른바 정전 60주년이다. 한때 6·25를 북한과 남한 중 누가 일으켰는지를 놓고 치열했던 논란은 1990년대 중반 옛 소련의 외교문서가 공개되면서 북한이 남한을 침략한 것으로 정리됐다. 그러나 일부 학자들의 신경전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전쟁 명칭에서부터 팽팽히 맞서고 있다. 국방부는 1999년 ‘6·25전쟁’을 공식 용어로 정했다. 초중고 교과서도 6·25전쟁으로 표기한 지 오래다. 반면에 진보 진영 학계에서는 ‘한국전쟁’이라고 달리 부르고 있다.
한국전쟁은 외국의 시각에서 바라본 명칭이다. 한국에서 일어났던 전쟁이라는 뜻이다. 임진왜란이나 병자호란처럼 전쟁이 일어난 시점을 앞세우는 것이 그동안 일반적인 전쟁 표기 방식이었다. 한국전쟁 쪽을 선호하는 학자들은 6·25전쟁이라는 명칭이 발발 시점을 강조해 북한에 대한 증오를 내포하는 용어라고 주장한다. 6·25전쟁이라는 명칭이 싫어 한국전쟁을 택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인식에는 6·25전쟁이 북한 침략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드러내길 꺼리는 정서가 깔려 있다.
좌(左)편향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도 북한의 남한 침략에 대해서는 ‘북한의 전면적인 공격으로 전쟁은 시작되었다’고 간단하게 기술하면서 상당 분량을 6·25 직전 남북한 간에 군사적 충돌이 그치지 않았다는 점을 설명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북한의 침략 사실보다는 그 이전에 남북한이 서로 으르렁댔던 상황이 더 중요하며 따라서 남북한 모두에게 전쟁의 책임이 있다는 식의 시각을 보여준다. 각종 사료에서 6·25가 소련 중국 북한이 기획한 침략 전쟁임이 분명히 드러났는데도 일부 학계에서는 북한의 책임을 희석시키는 데 급급한 모습이다.
역사에 무지한 청소년들에게 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한국사를 필수과목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역사교과서의 편향과 왜곡은 6·25전쟁뿐 아니라 근현대사 전반에 걸쳐 있다. 역사 교육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지금과 같은 여건에서는 잘못된 교육이 진행될까 걱정이 앞선다. 역사 교육 강화는 객관적인 역사 교육이 가능해진 다음에 이뤄져야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