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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현대건축]최고의 미술관들

입력 | 2013-06-19 03:00:00

파주 미메시스아트뮤지엄
창은 붓… 벽은 캔버스… 풍요로운 빛의 향연




모더니즘 건축의 마지막 거장인 알바루 시자와 김준성이 설계한 미메시스아트뮤지엄. 다양한 곡면으로 이뤄진 흰색 전시 공간은 전시 작품 이상으로 큰 즐거움을 선사한다. 건축주는 출판사 미메시스의 홍지웅 사장. 미메시스 제공

《 환기 리움 미메시스 의재. 한국 최고의 현대건축 20선에 이름을 올린 미술관은 모두 사립 미술관들이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환기미술관(9위)은 “급경사 지형에 맞춰 내외부 공간을 밀도 있게 표현했다”(김현섭 고려대 교수), 서울 용산구 한남동 리움미술관(11위)은 “개성이 뚜렷한 스타 건축가 3인의 조화로운 협업으로 완성도가 높다”(윤창기 경암 대표)는 호평을 받았다. 경기 파주시 파주출판단지 미메시스아트뮤지엄(16위)은 “건축의 감성적 가능성을 절제된 재료와 색채로 종합했다”(윤승현 인터커드 대표), 광주 동구 운림동 의재미술관(17위)은 “조형적으로 과도함 없이 무등산이라는 환경에 잘 조화시켰다”(강병국 동우건축소장)는 평가를 받았다. 이런 미술관들이 호평을 받은 반면 정부가 설립한 미술관이 순위에 들지 못한 이유는 뭘까. 》

미술관은 주택이나 공장과는 달리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건물은 아니다. 하지만 반드시 있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한 사회의 문화 수준을 가늠하는 기준이 된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 최고의 현대건축 20선에 미술관 4개가 포함된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최악의 현대건축으로 두 개의 국립박물관이 지목됐다. 국립민속박물관(최악 15위)은 전통의 어설픈 ‘흉내 내기’를 강요했던 시대의 산물로서 어쩔 수 없는 결과라고 하더라도, 국립중앙박물관이 최악의 건축물 17위로 선정된 것은 의외다. 경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역시 최악은 아니지만 최고의 건축물로도 선정되지 않았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국립’ 타이틀을 가진 큰 규모의 건축물이 전문가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이기 어렵다는 사실을 아쉽지만 받아들여야 할 것 같다. 건축가들이 큰 규모의 건물을 다루는 일에 미숙한 탓도 있겠지만, 계획안이 결정되는 과정에 관여하는 수많은 관료적 절차가 좋은 결과를 낳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최고의 건축으로 선정된 작은 미술관들은 규모를 뛰어넘는 독특한 개성을 보여준다. 미술관이 가지는 가장 본질적인 기능은 예술작품을 보관, 전시하고 이를 다수의 대중이 관람하도록 하는 역할이다. 특히 미술관의 전시공간을 중심으로 본다면 전시와 관람이라는 대단히 단순한 기능을 가진다. 이러한 단순한 기능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다양한 미술관이 탄생하게 되며, 이러한 해석의 다양함은 각 미술관이 만들어내는 공간적 경험의 풍요로움으로 귀결된다.

남종화의 대가인 의재 허백련(1891∼1977)의 예술혼을 기리기 위해 무등산 자락에 지은 의재미술관(2001년)은 조성룡과 김종규라는 노장과 젊은 건축가의 합작품이다. 미술관을 둘러싼 아름다운 숲의 전경을 건물 내부로 끌어들여 작품과 자연 관람의 기회를 동시에 제공한다. 특히 미술관 전시동 입구에서 차 마시는 곳을 거쳐 전시장을 향해 걸어가는 과정이 압권이다. 이 길은 평지도 있고 경사도 있는 그런 고즈넉한 숲길을 걸어가는 느낌을 정제된 방식으로 재창조하고 있으며 이어지는 의재 미술의 전주곡이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 언덕배기에 자리 잡은 환기미술관(1994년)은 재미건축가 우규승의 수작이다. 가장 흥미로운 장소는 1층의 주전시실이다. 관람객은 전시물을 관람하고 주전시실을 둘러싼 계단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가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다시 주전시실을 내려다볼 수 있다. 관람객은 또 다른 사람들이 전시물을 관람하는 모습을 보며 관람객 스스로가 전시물의 일부가 된 것 같은 느낌을 되새기는 ‘반추’의 경험을 하게 된다. 이곳의 강렬한 기억 때문에 이어지는 다른 전시공간들이 평범하게 느껴지는 것이 아쉽다.

경기 파주시 미메시스아트뮤지엄(2010년)은 포르투갈의 알바루 시자와 김준성의 합작품이다. 외관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독특하다. 그러나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 실내에 가득 찬 빛의 향연을 보는 순간 건물 형태가 지닌 난해함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다양한 형태와 높이의 창으로부터 들어오는 빛, 그리고 이 빛을 받아주는 다양한 벽의 형태로 더욱 풍요로워진 빛의 모습을 관람할 수 있다. 가히 ‘빛의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은 전시물이 없을 때 더 그럴 듯하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리움(2004년)의 관람 포인트는 세계적인 건축가 3명(네덜란드의 렘 콜하스, 프랑스 장 누벨, 스위스 마리오 보타)이 각자의 건물을 설계하고 이들이 모여 하나의 미술관을 완성했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재료, 형태, 공간의 느낌을 동시에 만나면서 세계 현대건축의 흐름을 단편적으로나마 읽을 수 있다. 건축가들의 명성에 맞는 참신한 경험을 아쉬워하는 관람객이 있다면 국보급 소장품들이 다소나마 위로가 될 것이다.

좋은 소장품만으로 좋은 미술관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훌륭한 소장품으로 가득 찬 ‘국립’의 경우를 보라. 서울 종로구 소격동 옛 기무사건물터에 짓고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올해 완공된다. 이 미술관이 국립미술관의 문제를 극복하고 공공 미술관으로서 최고의 건축물로 사랑받기를 기대해본다.

최윤경 중앙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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