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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호택 칼럼]北에 너무 급하게 많이 줘선 안 된다

입력 | 2013-06-20 03:00:00

식량과 에너지 공급자 중국… 北 비핵화 의지 달라졌다
핵 포기하고 개방하면 미얀마에 없는 한국 투자와 전기 들어가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눈을 떠요’ 진행

북한의 비핵화를 둘러싼 미국 중국 한국의 움직임이 숨 가쁘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나 소통에 큰 기대를 걸지 않는 분위기다. 북한과의 대화에 계속 실망한 쓰라린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과거에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이 궁지를 벗어나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제 중국도 행동의 변화가 따르지 않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북한을 거들 의사가 없는 것이 확실하다.

북한을 국제 기준에 맞춰 길들이겠다는 중국의 의지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김정은의 특사로 중국을 방문한 최룡해의 군복을 벗긴 데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북한 고위층 가운데 공식 행사에서 군복을 입지 않을 수 있는 남성은 김정일과 김정은뿐이 아닌가 싶다. 심지어 군대 경력이 전혀 없는 여성인 김경희까지도 공식 행사에서는 대장 계급장이 달린 군복을 입는다. 과거 조명록 차수가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 백악관의 빈방을 하나 잠시 쓰자고 했는데 국무부 관리들이 이유를 몰라 당황한 적이 있다. 조명록은 빈방에서 민간 복장을 차수 계급장이 달린 군복으로 갈아입고 빌 클린턴 대통령을 만났다. 중국이 북한 특사에게 복장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요구해 굴복시킨 것을 남의 일처럼 바라볼 일이 아니다. 우리도 북한의 응석과 생떼를 허겁지겁 받아주지 말고 국제 기준과 원칙을 요구할 때가 됐다.

중국은 미국 캘리포니아 서니랜즈 정상회담에서 북한 경제의 구원자이자 에너지 공급자라는 영향력을 발휘해 김정은을 굴복시킬(bring to heel) 방법에 관해 이례적으로 구체적 용어를 사용해 설명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미국 고위 관리들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중국은 행동 변화가 없는 한 북한을 포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북한 붕괴보다 북핵이 가하는 위협이 더 위태롭다는 점을 강조했다고 한다. 북이 핵을 가지면 결국 일본과 한국은 핵 개발 유혹에 빠져들 것이고, 미국도 태평양에 전력을 더 배치할 수밖에 없다.

중국이 식량과 에너지를 끊는다면 북한이 존속할 수 있을지에 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수십만 명이 굶어 죽은 고난의 행군도 넘긴 그네들이고 보면 백성을 원시시대의 삶과 굶주림 속에 몰아넣고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중국엔 식량과 에너지 단절보다 더 강한 지렛대가 있다. 중국이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오는 탈북자들을 체포해 넘겨주지 않는다면 북한은 1989년 헝가리로의 대규모 탈주 사태가 발생한 동독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북은 도발을 하고 대화를 통해 보상받는 패턴을 반복했다. 이번에도 핵실험과 미사일 도발을 거쳐 남북 당국회담, 6자회담으로 가는 길로 들어서는 듯이 보인다. 북한은 미중,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도발을 끝내고 대화할 시기가 왔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남북 당국회담이 재개되더라도 한국이 미국과 중국, 그리고 국제사회가 요구하는 비핵화의 초점을 흐려 놓을 정도로 너무 빨리, 너무 많이 나가서는 안 된다. 남북관계의 진전 속도가 너무 빠르면 국제사회의 비핵화와 미사일 규제, 인권상황 개선 노력을 방해할 수 있다. 북은 협상 과정을 잘게 나눠 파는 데 이골이 나 있다. 이번에는 개성공단만 재가동하고 금강산관광은 북의 비핵화를 봐가며 논의해야 한다. 금강산 같은 큰 고기라면 북한은 열 조각으로라도 나눠 팔 것이다. 어쩌면 북한의 비핵화를 관철할 수 있는 기회는 3국 공조가 본격 가동하고 있는 이번이 마지막일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도 지금처럼 50명, 100명씩 하는 방식으로는 천년이 걸려도 모자란다. 이상철 일천만이산가족위원회 위원장은 “이벤트 행사보다는 80대 노인들이 죽기 전에 생사와 주소를 확인해 편지 왕래라도 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김일성 김정일의 유훈(遺訓)이 비핵화라는 것은 속이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이다. 김정일은 루마니아의 차우셰스쿠나 리비아의 카다피를 보며 아들에게도 핵보유국의 유훈을 남겼을 것이다. 북은 루마니아나 리비아가 아니라 미얀마를 봐야 한다. 미얀마는 50년 군사독재로 가난에 찌들어 있었다. 하지만 민간정부가 들어선 지 2년 만에 민주주의 시장경제로 들어서고 있다. 코카콜라 유니레버 GE 필립스 비자가 미얀마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테인 세인 대통령이 미얀마 대통령으로서는 47년 만에 워싱턴을 방문했다. 1년 전에 누가 이걸 예상했겠나.

그러나 미얀마에는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다. 지금은 모든 투자가 플러그를 필요로 하는 세상이다. 미얀마에서 전기가 들어오는 가구는 13%다. 한국은 개성공단에 들어가는 전기와 물까지 공급한다. 북이 핵 포기의 길로 들어서면 미얀마보다 절대적으로 유리한 투자조건이 바로 한국과 전기다.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눈을 떠요’ 진행 ht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