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치부 기자
인원도, 조직도 줄지 않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은 ‘작은 청와대’를 지향했다. 대통령실을 대통령비서실로 원위치한 것도 청와대의 힘을 빼려는 조치였다. 그의 구상은 절반쯤 성공한 듯싶다. 청와대의 월권이나 내부 권력투쟁은 아직까지 눈에 띄지 않는다. 청와대 참모들은 그저 박 대통령을 보좌하는 데 여념이 없다.
유민봉 국정기획수석비서관의 말이다. “우리는 수렴형 사고를 하지만 대통령은 확산형 사고를 한다. 우리는 큰 것을 해결해 작은 문제를 풀려고 한다면 대통령은 작은 문제를 해결해야 큰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남북 당국회담이 무산된 12일 이 수석은 박 대통령의 “과거 발언”이라며 “형식이 내용을 지배한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은 이틀 뒤 탕자쉬안(唐家璇) 전 중국 국무위원을 만나 똑같이 말했다. 박 대통령의 현재 발언을 과거 발언으로 ‘포장’한 건 아마도 ‘대통령이 형식에 얽매여 회담이 무산됐다’는 비판을 피하려는 이 수석 나름의 ‘계산’이었다는 느낌이 든다. 덤으로 박 대통령이 과거부터 얼마나 원칙을 중시했는지도 강조할 겸 말이다.
박 대통령을 향한 참모들의 헌신을 폄훼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절반의 성공이라는 건 박 대통령의 사고가 참모들의 사고를 지배하면서 모두 작은 문제 해결에 매달리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어서다. 청와대의 무게중심은 정책이 아닌 정치에 있다. 정책은 내각의 몫이다. 하지만 오늘도 상당수 행정관들은 부처 보고서를 요약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도대체 이 정부에서 시시각각 변하는 국정의 큰 그림은 누가 그릴까. 오직 한 사람만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작은 청와대, 정말 작아진 것은 참모들의 국정 디자인 능력이 아닌가 싶다.
이재명 정치부 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