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피(오른쪽)와 채(왼쪽)가 2011년 10월 슬로베니아 돔잘레의 오두막집에서 주인 남매인 토네(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마린카(왼쪽에서 두 번째)와 기념사진을 찍었다. 낯선 여행자를 반기며 오두막집을 내준 이들 덕분에 티피와 채는 푹 쉬고 다음 여정을 계속할 수 있었다. 최준유 씨 제공
티피와 채가 노르웨이의 도로를 모터사이클로 달리고 있다. 이들은 유럽의 최북단인 노르카프에 도착할 때까지 노르웨이 도로를 하루 평균 500km씩 달렸다. 최준유 김채윤 씨 제공
뒤따르던 친구가 울먹이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흙먼지 속에 묻혀버렸다. 덤프트럭이 급정거하는 소리가 들렸다. 구름이 가시듯 흙먼지가 가라앉자 덤프트럭의 바퀴 앞에 죽은 듯 널브러진 사람의 형체가 서서히 나타났다.
“괜찮아, 괜찮아.”
여자는 놀라 달려온 친구를 안심시키려고 애썼다. 간신히 몸을 일으킨 여자는 손으로 옆에 쓰러진 모터사이클부터 더듬었다. 여기저기 긁히고 돌이 박힌 모터사이클을 보고 여자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 지금 행복해?
하늘이 눈부시게 푸르던 2009년 어느 가을날, 티피가 채에게 불쑥 물었다.
“글쎄. 어릴 때는 오토바이 타고 세계여행을 하면서 살면 행복할 것 같더라.”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은 채의 말 한마디가 두 사람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청소년 시절 유도선수를 했던 기질이 남아 지고는 못 사는 다혈질 티피와 조용하고 섬세한 채는 2006년 인도 다람살라 여행길에서 만난 길동무였다.
티피는 리더십과 비즈니스 성공 사례를 연구하는 연구소의 마케팅 담당자였다. 채는 무역회사를 그만두고 오랜 꿈이었던 카페가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차리기 위해 홍익대 앞 커피숍에서 바리스타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평화롭고 조용한 두 사람의 일상에는 이따금 불청객이 찾아왔다.
‘너 지금 행복해? 지금 삶이 최선이니?’ 이런 질문은 길모퉁이에서 예기치 않게 맞닥뜨린 불편한 옛사랑처럼 티피와 채의 마음을 휘저었다.
“지금 떠나지 않으면 영원히 붙박이장처럼 살아야 할 거야.” “그래, 떠나자.”
모터사이클을 타본 적도 없지만 ‘모터사이클 여행’을 테마로 정했다. 주머니가 가벼웠지만 여행 루트를 차곡차곡 챙겼다. 여행 준비를 위해 함께 살던 티피와 채는 전세금까지 빼 7000여만 원을 마련했다. ‘1년 여행 경비=1억 원’이라는 모터사이클 여행자들의 공식에 비춰 보면 턱없이 부족했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국경을 넘나드는 데 생각보다 많은 돈이 필요했다. 여자 둘이 떠나는 모터사이클 여행이라면 홍보효과를 기대하는 후원 기업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1년 동안 차근차근 준비하기 시작했다. 150개 모터사이클업체, 헬멧업체, 캠핑용품업체에 100쪽이 넘는 제안서를 보냈다. 제 아무리 솔깃한 제안서라고 해도 2종 소형 면허조차 없는 여자 둘이 유라시아 대륙을 모터사이클로 횡단하겠다는 계획에 선뜻 스폰서가 되겠다고 나서는 곳이 있을 리 만무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려던 순간 혼다코리아가 모터사이클을 절반 가격으로 할인해주고 각종 부품과 장비도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125cc 혼다 PCX 두 대는 함께 기르는 고양이 마로의 이름을 따 ‘마붕’과 ‘마운탄’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몸집은 작지만 휘발유 1L로 54km는 너끈히 달릴 수 있는 야무진 모습이 티피와 채를 빼닮은 듯했다. 티피와 채, 그리고 마붕과 마운탄은 그렇게 운명처럼 만났다.
○ 세상에 단 하나뿐인 루트
2011년 8월 7일 티피와 채가 첫 시동을 걸었다. 서울에서 출발한 베테랑 바이커들이 3시간 만에 주파하는 동해항까지 8시간에 걸쳐 천신만고 끝에 도착했다. 동해항에서 출발하는 배에 마붕과 마운탄을 싣고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한 뒤 끝없는 시베리아의 비포장도로를 덤프트럭과 싸우며 달리는 길은 서울에서 동해로 이어진 길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시베리아의 추위는 일찍 찾아왔다. 9월 말로 접어들자 차가운 바람에 손이 얼어붙어 브레이크를 제대로 잡을 수 없었다. 시베리아의 바람에 밀려 중앙선을 건너 역주행을 하기 일쑤였다.
“치타 주(州)를 지날 때는 아무것도 먹지 말고 절대 멈추지 말고 계속 달려야해.”
길에서 만난 바이커들의 조언이 수시로 귓가에 울렸다. 매일 오전 7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까지 계속 달렸다. 달리다 해가 지면 숲속에 텐트를 쳤다. 사람이 아주 많거나 아니면 차라리 사람이 아예 없는 곳이 안전했다. 풀벌레 소리조차 없이 싸늘한 바람 소리만 들려오는 시베리아에서 추위는 텐트와 침낭 속을, 때로는 모든 걸 버리고 절박하게 집을 떠나온 마음속까지 파고들었다.
“엄마 반찬 생각난다.”
추운 텐트 안에서 딱딱한 빵에 버터를 바르면서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힐 때도 있었다.
이따금 물을 섞은 기름을 파는 주유소도 있었다. 신나게 달릴 때는 시속 130km까지 속도를 내는 마붕과 마운탄이었지만 물 섞인 기름을 넣으면 맥을 못 췄다. 아무리 속력을 내도 시속 40km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연료 게이지가 바닥을 찍을 때는 어김없이 티피와 채에게도 배고픔이 찾아왔다. 수십, 수백 km를 달려도 인적조차 없는 길에서 기적처럼 민가가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온 여행자들인데 여기 텐트 쳐도 되나요?”
“한국에서 여자 둘이 여기까지 왔다고? 미쳤구나 너희들!”
‘Korea’라고 쓰인 모터사이클을 보여주며 여행 과정에 대해 얘기하면 집주인들은 놀라 혀를 내두르면서도 기꺼이 앞마당에 텐트를 칠 수 있도록 해줬고 음식까지 줬다.
성격이 다른 두 여자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추위도 배고픔도 피로도 아닌 다툼이었다. 마운탄을 타고 달리던 채가 넘어졌을 때 친구는 본체만체 하면서도 넘어진 마운탄만 고장난 건 아닌지 걱정해 티피와 멱살을 잡을 뻔한 적도 있었다. 사소한 말다툼으로 시작한 싸움이 텐트 안에서 치고받는 몸싸움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싸움은 늘 아무도 없는 길 한복판에서 티피와 채 둘이 얼싸안고 엉엉 우는 장면으로 결말이 났다. 여행을 떠난 지 약 5개월이 지난 2012년 1월 말 영국 런던에서 만난 60대 할머니 바이커들인 쇼나와 팻은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이 싸우다가 서로를 죽이지만 않으면 우리처럼 사이좋은 친구로 평생 함께 늙어갈 거야.”
‘뭘 하면 행복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한 여행은 서울과 러시아 우크라이나, 헝가리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영국 프랑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네덜란드 독일 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 폴란드 체코 오스트리아 크로아티아 몬테네그로 알바니아를 거쳐 그리스 아테네에서 끝이 났다. 티피와 채, 마붕과 마운탄이 27개국을 돌아다니며 15만 km의 바큇자국으로 개척한 세상에 단 하나뿐인 루트였다.
하지만 동행은 거기까지였다. 마붕과 마운탄을 배에 실어 고향에 데려가려면 티피와 채는 1000만 원이 넘는 돈을 지불해야 했다. 게다가 돌아가는 배에서 또 해풍(海風)과 멀미에 시달렸을 것이다.
“여기까지 고생해서 온 그 아이들을 그렇게 힘들게 데려가야 하나. 그것도 집착이니 버려 보슈.”
아테네에서 만난 어느 한국인 사업가의 말에 티피와 채는 오히려 마음이 홀가분해 지는 것을 느꼈다. 작별의 순간 둘은 울지 않았다.
“마붕, 마운탄! 너희는 또다시 누군가의 든든한 발이 될 거야. 조각조각 나서 다른 친구들을 만나더라도 계속 행복한 여행을 하길 기도할게.”
그들은 마붕과 마운탄을 아테네 근교의 한 집시촌에 세워두고 고향으로 향했다. 1년 1개월 하고도 하루를 쉼 없이 한몸처럼 함께 달렸던 그들은 그렇게 ‘쿨 하게’ 작별했다.
○ 제주, 또 다른 여정의 시작
티피(본명 최준유·33)와 채(본명 김채윤·32)는 2012년 10월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제주도에서 둥지를 틀었다. 여행경비를 제외하고 남겨놓았던 ‘인생의 밑천’으로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의 150년 된 농가 주택과 1만3000m² 넓이의 감귤 밭을 임차했다. 먹고 잘 곳이 필요해 알음알음 이들의 집에 공짜로 머물다 간 사람만 200여 명에 이른다. 티피와 채는 문을 두드리는 지친 여행객들을 끝내 외면하지 못한다.
제주도의 해안도로를 신나게 달리는 외국인 모터사이클 여행객들을 볼 때면 아직도 티피와 채의 심장은 두근거린다.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찾겠다고 15만 km를 쉬지 않고 달렸지만 티피와 채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저마다의 꿈을 찾아 달리는 여행자들에게 기꺼이 자리를 내어줄 제주도의 게스트하우스와 다양한 여행상품을 개발해 여행자와 지역 주민을 연결해주면서 최소한의 이익만 남기는 ‘착하고 공정한 여행사’를 만드는 게 현재의 꿈이다. 물론 그것이 자신들의 여정의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을 티피와 채는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언젠가 또다시 답을 찾기 위해 성산읍의 작은 집을 떠나 남미로, 아프리카로 쉼 없이 달릴 것이다.
제주=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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