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집단적 시국선언 반대분위기 확산
국가정보원 댓글 의혹사건과 관련한 대학 총학생회의 시국선언 등 입장 표명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전체 구성원의 의견이 아니다'라며 이 같은 행동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공기관이 자행한 민주주의 훼손을 시정하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화여대 총학생회 '우리 이화'도 이날 정오에 학교 정문 앞에서 시국선언문을 낭독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총학생회는 시국선언문에서 △새누리당의 국정원 관련 국정조사 즉각 수용 △선거개입과 축소수사를 자행한 관련자 처벌 △권력기관의 불법과 부정 중단 및 완전한 국민주권 실현 보장 등 3가지 사항을 요구했다.
연세대와 한양대 등 다른 대학 학생회도 시국선언에 나설 예정이다. 하지만 일부 학생은 학내 게시판과 총학생회 페이스북에 "총학이 정치적 의사까지 대표할 권리를 위임받은 건 아니지 않으냐"며 "모든 학생이 동의하는 것도 아닌 사안을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이라고 반대 목소리를 올렸다.
이 글에는 20일 오후 9시 현재 86개의 댓글이 달렸다. 한 사람이 여러 번 쓴 댓글을 제외하면 찬성 55건, 반대 15건, 중립적 의견은 4건이다.
위원회를 열어 시국선언에 대해 논의할 예정인 한양대의 학내 커뮤니티 '위한'에 올라온 관련 글 중에는 20일 현재 반대 의견이 절반이 넘는다. 반대 글들 가운데는 '시국선언 정말 할 거면 학생들 의견을 묻는 투표를 먼저 하라'는 내용도 있다.
주요 대학 사이트 등에 올라온 반대 글들은 △시국선언문의 내용과 생각을 달리하는 학생들도 있는데 총학생회가 왜 학교를 대표해 선언문을 낭독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시국선언은 과거 독재시대처럼 언론의 창구가 협소할 때나 쓰던 방식이고, 지금은 개인미디어를 통해서 얼마든지 목소리를 낼 수 있는데 왜 하필 '시국선언'인지 모르겠다 △다른 학교에서 한다고 줄줄이 따라하는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등의 주장을 담고 있다.
이번 주말부터 다음 주초까지 시국선언을 계획했던 서울 소재 대학들은 학생들의 반발을 감안해 시국선언이라는 표현 대신에 '기자회견' '성명 발표' 등으로 행사 명칭을 바꾸거나 일정을 조정할 계획이다. 당초 연세대와 공동으로 시국선언을 할 것이라고 알려졌던 고려대는 "학우들의 의견을 반영해 시국선언을 결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앙대 학생회 측도 "학우들의 반발이 없도록 시국선언 외에 다른 의견표명 방식도 알아보며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은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서 개인이 정치적 의사를 자유롭게 표현하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자신의 입장과 다른 내용으로 집단적 시국선언을 하는 것에 반대하는 학생들이 나타난 것"이라고 진단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일간베스트저장소 등 특정 정치 성향을 가진 사이트에서 정치와 관련된 사실들을 수집하고, 목소리를 내는 학생이 많아졌다. 학생회의 집단행동을 무조건 따르지 않고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변화"라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의 시국선언 이슈에 비해 이번 사안은 '과연 시국선언을 할 만한 것인가'에 의견이 분분한 것도 한 원인"이라고 덧붙였다.
1980년대 시국선언과 비교해 최근 시국선언의 무게감이 줄어든 것도 한 원인이다. 권형기 서울대 정치학부 교수는 "때론 '시국선언'이라는 표현보다는 '의견 개진'이라는 말이 더 맞는 경우가 있다. '시국선언'을 남용하면 무게감이 떨어져 지지를 받기 힘들다"면서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학생들이 국가적 사건에 의사를 표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본인들의 목소리에 무게를 싣는 여러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수연·김성모·곽도영 기자 sykim@donga.com
◇21일자 A12면 총학 “국정원 사건 시국선언”… 일부 학생 “대학이름 걸지말라” 기사에서 김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를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로 바로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