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릭 월컷(1930∼)
내 친구의 반은 죽었다
네게 새 친구를 만들어 주지, 땅이 말했다.
그러지 말고 옛 친구들을 그 모습대로 돌려주오,
결점이랑 모두 함께. 난 외쳤다.
오늘 밤 나는 등나무 숲을 스쳐 오는
희미한 파도 소리에서 친구들의
말소리를 엿들을 수 있다. 그러나 나는
걸어서 저기 하얀 길을 혼자 갈 수도 없고,
지상의 짐을 벗어나는 부엉이의
꿈꾸는 동작으로 떠다닐 수도 없다.
아, 땅이여, 네가 가두어 둔 친구들이
내 사랑하는 이승의 친구보다 많구나.
절벽 옆 바다 등나무는 푸른빛 은빛으로 번득인다.
이 나무들은 나의 신앙을 지켜주는 천사의 창이었다.
그러나 상실 속에서 더 굳건한 것이 자라나서
그건 돌 같은 냉철한 광채를 띠어,
달빛을 견뎌내고, 절망보다 더 멀리,
바람처럼 굳세어져 바다와 경계를 이루는 저 등나무
숲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옛 모습대로 우리에게 되돌려주는 것이니,
결점이랑 모두 함께, 옛날보다 고상하진 않아도,
그냥 그대로.
나무는 인간의 영혼을 위로하고 치유하는 것 같다. 소나무를 좋아하는 사람, 대나무를 좋아하는 사람, 측백나무를 좋아하는 사람, 벚나무를 좋아하는 사람…. 나무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다. 나는 플라타너스를 좋아한다. 남산 하얏트호텔 건너편에 야외식물원이 있다. 그 맨 꼭대기에 플라타너스 길이 있었다. 한 아름이 넘는 둥치에 아주 높다랗게 키가 커서, 그 아래 있으면 깊은 숲에 숨어든 듯 아늑했고, 우듬지를 따라 하늘을 헤엄치는 듯 머리가 시원했다. 재작년엔가, 그 플라타너스들이 전부 사라졌다. 쉰 살은 족히 넘었을 그 나무들을 누가 왜 베어버렸는지 꼭 밝혀내리라. 그리운 플라타너스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