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3~2013, 6·25 정전 60년/준비해야 하나된다]■ 탈북자들이 말하는 ‘南에서 새로 알게 된 6·25’
무기공장 둘러보는 김정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자강도 강계 뜨락또르(트랙터) 종합공장을 현지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2일 보도했다. 이곳은 포탄 등을 생산하는 북한의 대표적인 군수공장으로 알려져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22일 오전 경남 창원시 합성감리교회에서 열린 제11회 탈북동포주일 기념행사. 꼬마 탈북자들에게 6·25전쟁에 대해 묻자 되돌아온 대답은 우리 주변 학생들의 대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북한의 소학교(한국의 초등학교에 해당)에 들어가기 전에 탈북을 한 학생들의 경우 정식으로 6·25전쟁에 대해 배운 적이 없는 탓이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두리하나’ 대표 천기원 목사는 “열 살 이전의 아이들은 교육을 받기 전이라 대체로 6·25전쟁에 대해 잘 모른다”며 “10대라 하더라도 부모가 탈북한 뒤 중국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6·25전쟁을 모른다”고 설명했다.
○ “美제국주의에 맞선 조국해방전쟁이라고 배워”
그러다 보니 탈북자들이 처음 한국에 왔을 때는 6·25전쟁의 진실이 무엇인지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대다수의 사람이 자신들이 배웠던 내용과 정반대로 말하며 생각을 바꿀 것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김학성 씨는 “처음에는 전쟁이 북한의 남침으로 발생했다는 말을 믿을 수가 없었지만 이제는 북한의 남침이라는 것에 더 수긍이 간다”면서도 “전쟁 중 벌어진 많은 의혹에 대해 남과 북이 모두 거짓말을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은 한국에 와서 6·25전쟁과 관련된 다양한 ‘팩트(fact)’를 접하면서 발발 원인에 대한 인식을 바꿔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탈북자 김명주 씨(35)는 한국에서 만난 예전 남자친구와 6·25전쟁의 원인을 놓고 여러 차례 심하게 말다툼을 했다. 북한의 기습도발로 발생한 전쟁이란 남자친구의 주장에 김 씨는 “내가 아무리 탈북자라고 해도 역사적 사실은 분명히 해야 한다”며 북한에서 배운 ‘남한의 북침설’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논쟁이 끝나지 않자 어느 날 남자친구는 김 씨에게 비디오테이프 하나를 건넸다. 그 안에는 6·25와 관련해 1990년대에 공개된 러시아와 중국 정부의 기록물이 담겨 있었다. 김 씨는 “객관적인 증거를 접하면서부터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고 이제는 북한의 남침이라는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 “북녘 땅은 굶주림과 인권유린으로 고통”
“와∼강냉이국수다!”
이날 행사에는 박시영 목사를 비롯해 경남지역 기독교계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탈북자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나타냈다.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는 축사를 통해 “북녘 땅은 김일성 김정일 우상 숭배의 결과로 굶주림과 인권유린의 고통에 빠져 있다”며 북한동포들에 대한 따뜻한 관심을 촉구했다.
행사 말미에 마련된 축하공연 자리에선 50여 명의 탈북 청소년들이 그동안 갈고 닦은 솜씨를 300여 명의 관중 앞에서 마음껏 뽐냈다. 특히 북한에서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의 생존조차 알 수 없는 열한 살 김혜송 어린이가 ‘그리운 어머니’를 부를 땐 분위기가 숙연해지기도 했다. 이어 평양백두한라예술단, 김철웅 탈북 피아니스트의 공연이 이어지자 객석에선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천기원 목사는 “지금 북한에서 벌어지는 인권 유린과 참혹한 고통의 실상은 ‘과거형’이 아닌 ‘현재형’의 일”이라며 “한민족인 우리는 북한 주민과 탈북동포들의 고통에 대해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햇수로 11년째를 맞는 탈북동포주일 기념행사는 ‘일년에 단 하루 만이라도 탈북자에게 관심을 갖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행사를 주관한 두리하나는 1999년 10월 설립된 비영리단체로, 북한 정권에서 신음하는 북한동포를 구제하고 탈북자를 위한 체계적인 정책을 제시해온 단체다. 두리하나란 이름 역시 ‘남과 북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창원=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