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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김순덕]EU 가입한 ‘발칸의 진주’

입력 | 2013-06-25 03:00:00


이렇게 아름다워도 되는 걸까. ‘발칸의 진주’ 크로아티아를 가봐야 할 16가지의 이유를 소개하면서 한 블로거가 쓴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가 빠졌다. 꼭 맛봐야 할 프로셰크 얘기다. 달달하고도 상큼해서 여자들이 특히 좋아하는 이 디저트 와인은 크로아티아가 자랑하는 ‘국민 와인’으로 꼽힌다. 안타깝게도 다음 달부터는 프로셰크를 프로셰크라 부르지 못하게 됐다. 이미 유럽의 단일 시장에 진출해 있는 이탈리아 와인 프로세코와 헷갈린다고 유럽연합(EU)이 결정했기 때문이다.

▷크로아티아는 7월 1일 EU의 28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한다. 1991년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에서 독립한 이 나라는 내전(內戰)의 상처를 딛고 유럽의 당당한 일원으로 도약했다. 유럽 경제가 흔들리면서 “EU의 통화인 유로가 유럽을 잡아먹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중시하는 EU의 매력은 여전히 이어지는 듯하다.

▷EU의 가입 기준을 맞추기 위해 크로아티아는 내전의 전범들을 처벌했고, 비효율적인 국영기업을 민영화했다. 그런데 프로세코 때문에 프로셰크는 안 된다니.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뒤늦게 정신이 번쩍 드는 모양이다. 크로아티아의 유명한 관광지 두브로브니크의 레스토랑 주인들은 “정부나 자축 분위기지, 우리는 별로다. 물가만 오르면 관광객도 준다”며 걱정이 태산이다.

▷두브로브니크 거리에는 거의 10m마다 현금인출기가 설치되어 있다. 적지 않은 숙박업소와 상점에서 신용카드를 받지 않는다. 그러니 지하경제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40%가 넘을 수밖에 없다. 공산시대의 유산인 관료주의, 국영기업의 방만과 무능은 악명이 높다. 이 나라 청년실업률이 40%나 되는 것도 지나친 규제 탓이 크다. “EU에 가입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구조 개혁을 하지 않는다면”이라고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지는 경고했다. 우리나라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후 당장 선진국이라도 된 듯 축배를 들었다가 혹독한 외환위기를 맞지 않았던가.

―두브로브니크에서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