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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옥의 가슴속 글과 그림]끝나지 않는 악몽

입력 | 2013-06-25 03:00:00


달리, ‘전쟁의 얼굴’, 1940년.

전쟁은 미술에서 가장 오래되고 인기 있는 주제 중의 하나였다. 전통적인 전쟁화에는 애국심을 자극하거나 영웅적 희생을 드러내는 장면들이 그려졌다. 즉 전쟁화는 승자의 권력과 힘을 과시하는 정치선전 도구였다. 그러나 제1, 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예술가들은 연출된 전쟁화가 아닌 전쟁의 실상을 그림에 표현했다.

스페인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전쟁화는 세계대전의 공포와 광기를 가장 충격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걸작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한눈에 보아도 끔찍한 그림이다. 생명체의 흔적조차 느껴지지 않은 사막 한가운데 참수된 머리가 놓여 있다. 공포에 질린 얼굴은 뱀들의 소굴이 되었고 칼에 베인 목에서 흘러나오는 붉은 피가 대지를 적시고 있다. 이 무시무시한 얼굴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영웅 페르세우스에게 목이 잘린 괴물 메두사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괴물의 두 눈과 입안은 흉측한 해골이 차지하고 있다. 그 해골의 눈과 입도 역시 해골이 점령했다. 눈과 입이 해골로 변형되는 이 그림은 달리 화풍의 특징인 한 개의 이미지가 다른 이미지로 변형되는 다중심상(心象) 기법으로 그려진 것이다.

달리는 꿈에서 얻은 아이디어(꿈에서는 눈과 입이 해골로 변형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를 메두사 전설에 결합해 악몽 같은 전쟁화를 창조한 것이다. 전쟁소설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에서는 다음과 같은 대화가 오간다.

“중위님, 위생병인 우리들은 전쟁이 얼마나 나쁜 것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얼마나 나쁜지 알게 되면 손댈 방법조차 없게 되겠죠. 모두들 미쳐버리고 말테니까요. 군인들 중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간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얼간이들 때문에 전쟁이 계속되는 겁니다.”

우리가 1950년 6월 25일의 악몽을 아직도 꾸고 있는 것은 전쟁의 잔인함을 깨닫지 못한 얼간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명옥 한국사립미술관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