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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정전 60년]유공자 인정 행정소송 5명중 1명만 이겨

입력 | 2013-06-25 03:00:00

조국에 몸 바쳤는데…
자료부족 탓… 정부 7월부터 기준 완화




6·25전쟁 당시 전북 순창경찰서 구림지서에서 반공청년단인 일명 민보단장으로 활동한 강모 씨는 1950년 11월 순창서 소속 경찰관과 함께 전투에 참가했다. 그러다 다리에 총상을 입고 대열에서 혼자 이탈해 구림지서로 복귀하던 중 북한군에 잡혀 총살당했다. 강 씨는 순국반공청년운동유공자로서 국무총리 표창까지 받았다.

강 씨의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상 애국단체의 단원으로 전투 중 사망해 전몰군경에 해당된다며 2010년 국가보훈처에 국가유공자 유족 등록신청을 했다. 보훈처는 “강 씨가 당시 경찰관과 함께 전투에 참가했다가 복귀하는 과정에서 총살됐지만 전투 또는 전투에 준하는 행위 중 사망했다고 단정하기 어려워 전몰군경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등록을 거부했다. 1심 법원 역시 같은 취지로 강 씨 아들의 청구를 기각했다.

이처럼 행정소송을 거치더라도 6·25 때 참전했다가 숨진 사람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는 허다하다. 전국 각급 1심 법원에 따르면 2008년부터 올해 6월까지 국가유공자 등록을 신청했다가 보훈처로부터 거부당해 법원에 행정소송을 제기한 사건 43건 중 8건(18%)만 1심에서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의 14건 중엔 한 건도 인정받지 못했다.

소송을 통해 참전용사가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 어려운 이유는 국가유공자의 기준 및 범위를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해서다. 국가유공자법에 따르면 전투 또는 전투에 준하는 직무수행 중 숨지거나 다친 경우, 공비 소탕 작전 또는 대간첩 작전에 동원돼 임무 중 숨지거나 다쳤을 때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사망이나 부상이 전투 행위와 연관돼 있다는 점을 기록으로 증명해야 하는데 6·25가 발발한 지 63년이 돼 관련 기록이 소실된 경우가 많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6·25 참전자 전공상에 대한 심사기준’을 마련해 다음 달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새 기준에 따르면 6·25전쟁 당시 문서기록이 없고 진술만 있는 경우라도 보훈처가 직접 관련 자료를 보강하고 담당 조사관이 당사자와 같은 부대에 근무했던 전우를 찾아 2명 이상의 진술이 일치하면 보훈심사위원회를 거쳐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했다.

강경석 기자 cool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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