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극장 창작극 ‘배웅’ ★★★☆
노인 전문 요양병원을 무대로 웃음과 눈물을 안겨주는 창작극 ‘배웅’의 두 돛대와 같은 배우. 우락부락한 외모와 반대로 30년간 교편생활을 한 먹물 순철 역을 맡은 이영석(왼쪽)과 깡마른 체격에 외항선장 출신의 주책바가지 봉팔 역을 맡은 오영수. 극단 실험극장 제공
두 사람은 살아온 이력만큼 성격도 판이하다.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에 예민한 순철이 내성적이고 과묵하다면, 여자 꽁무니 쫓아다니기 바쁜 봉팔은 외향적이고 수다스럽다. 순철이 이성적이라면 봉팔은 감성적이다.
병원 터줏대감으로 살아온 봉팔은 옆 침대에 열한 번째 환우로 찾아든 순철에게 자기 방식의 요란한 오리엔테이션을 펼친다. 하지만 순철은 시집간 외동딸에게 부담 주기 싫어 여행 간다고 거짓말하고 몰래 입원한 처지라 그런 봉팔이 거북하고 귀찮다.
하지만 숯과 얼음처럼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은 나잇값을 할 줄 안다. 서로가 감추고 싶어 하는 속살을 슬쩍슬쩍 훔쳐보면서 동병상련의 정을 차곡차곡 쌓게 된다. 순철은 의사 사위까지 뒀지만 짐이 되기 싫어 홀로 죽음을 맞으려 하고, 봉팔은 자신의 보험금으로 아들네 빚 갚으려 병원 신세를 지는 슬픈 ‘나이롱환자’다.
티격태격하던 두 사람의 관계는 봉팔이 치매에 걸리지 않겠다고 아침마다 주문처럼 외우는 시베리아횡단철도 역 이름을 통해 극적 전환을 맞는다. 그 소리를 못 견뎌 하던 순철이 어느새 봉팔과 함께 나란히 외우기 시작한 것이다.
“완도에서 배를 타고 목포 내려서/기차를 타고 광주 익산 서울 도라산/개성 평양 나진 선봉 두만강 브라디보스토크/브라디보스토크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 천국열차에 몸을 싣고….”
극단 실험극장의 창작극 ‘배웅’(강석호 작, 민복기 각색·연출)은 이렇게 황혼 녘에 맺게 되는 슬프고도 훈훈한 우정을 그려낸다. 2000년 초연된 한 신문사 신춘문예 당선작 단막극을 14년 만에 장막극으로 발효시킨 작품이다.
극 초반에 까다로워 보이는 순철은 실제론 ‘꼬랑내 나는 코골이’임이 드러난다. 게다가 젊은 시절엔 훈장질보다는 춤을 배우고 싶어 했던 끼 많은 남자였다. 반면에 난봉꾼 행세하는 봉팔은 평생 마누라 하나만 사랑했던 순정남이라는 것이 드러난다. 그가 입에 달고 살던 ‘금발의 나타샤’라는 항구의 여인이 실제론 자신이 배 타고 나갈 때마다 기다려주던 아내였음이 밝혀진다.
이런 반전효과는 ‘3월의 눈’에서 장오 역을 고 장민호와 나눠 맡은 깡마른 노배우 오영수(69)와 영화 ‘마더’에서 원빈의 비밀을 아는 고물장수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 성격파 배우 이영석(54)의 대조적 외모와 숙련된 연기를 통해 더욱 빛을 발한다. 두 배우 중 누가 친구의 마지막 길을 배웅할 것인가.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뜨겁게 적신 눈시울에 당황하는 어르신 관객을 많이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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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7일까지 서울 대학로 설치극장 정미소. 2만5000원. 02-889-356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