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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때 임수경네서 세 살아…밀입북 제안도 비슷한 시기 받았죠’

입력 | 2013-06-26 03:00:00

‘문학의오늘’ 여름호에 대학시절 자전적소설 ‘토닉 두세르’ 연재하는 최영미
운동권 리더가 “북한 같이가자” 권유… 겁많고 튀는 행동 싫어 단번에 거절
1980년대 청춘의 방황 불안 아픔 그려… 집필 통해 나 자신을 용서하고 치유




최영미 시인은 장편소설 ‘토닉 두세르’에 등장하는 대학교 이름을 원래 ‘한국대’로 했다가 ‘S대’로 바꿨다고 했다. 지인이 “나중에 번역이 되면 한국대가 ‘Korea University’(고려대의 영문명)로 바뀐다”고 지적해줬기 때문이다. ‘번역까지 생각했냐’고 물으니 그는 “꿈은 커야죠”라며 웃었다. 고양=황인찬 기자 hic@donga.com

몇 달 전 최영미 시인(52)과 와인을 한잔했다. 그는 흥미로운 얘기를 했다. “수경이와 비슷한 시기에 방북 제의를 받았다” “수경이 집에 세 들어 살았다”는 얘기였다. 여기서 수경이는 1989년 6월 평양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지금은 민주당 국회의원이 된 바로 임수경(45)을 말한다.

최 시인은 문학의오늘 여름호에 장편소설 ‘토닉 두세르’의 연재를 시작했다. ‘386 시인’으로 불리지만 정작 본인은 1980년대를 다룬 산문을 쓰지 않다가 이번에 최초로 그때를 회고하는 작품을 썼다. 시인이 살고 있는 경기 고양시를 찾아 그를 다시 만났다.

‘토닉 두세르’의 초고는 이미 1988년 여름에 시작됐다. 고학력(서울대 서양사학과) 운동권 출신에 나이도 많았던(당시 27세) 시인을 반기는 회사는 없었다. 친구와 경기 양평에 집을 얻어 학원 강사를 하기로 했다. 함께 면접을 본 친구는 붙었지만 시인은 떨어졌다. “오라는 데도 없고, 집은 망했고, 당장 밥벌이를 해야 하는데 할 일이 없었죠. 그때 지난 일을 정리해 보자라고 쓴 게 이 소설이죠. 초고는 원고지 450장 정도였어요.”

‘토닉 두세르’는 한 외국 화장품회사의 화장수 이름. 운동권 청춘들을 그린 소설 제목으로는 이질적이다. 소설은 운동이라는 대의 속에 숨겨져 왔던 청춘들의 방황과 불안, 아픔을 상세히 조명한다. 작가는 왜 25년 만에 옛 ‘일기장’을 들춰냈을까.

“저는 사실 저 자신을 용서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이 글을 쓰고 털어냈죠. 글로 저 자신을 용서하게 됐고, 저한테는 (집필이) 치유가 된 것 같아요. 다만 ‘80년대’가 주제는 아니고 아팠던 청춘의 이야기예요.”

자전적 성격이 강한 작품 얘기를 나누다 보니 화제는 자연스레 시인의 성장기, 대학생활로 이어졌다. 임수경 의원에 대해 물었더니 “혹 틀릴까봐 등본까지 떼 봤다”며 웃었다.

“수경이 집에는 제가 고등학교(선일여고) 1학년 때인 1977년 가을부터 대학교 1학년 봄까지 살았어요. 수경이 집은 평창동의 근사한 2층 양옥집이었고, 저희는 수경이네 소유의 그 옆 단층집에 세 들어 살았죠. 제 공부방 창문으로 수경이네 집 마당이 보였죠.”

시인보다 일곱 살 아래였던 임 의원은 시인의 막냇동생과 동갑이다. 나중에 동생과 함께 임 의원의 방북 보도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고. “걔가 그런 일을 할 줄 몰랐죠. ‘간도 크게 북한에 갔다’고 동생과 얘기했던 생각이 나네요.”

하지만 시인도 방북 제안을 받았다고 했다. 1989년 초였으니 그해 6월 방북한 임 의원과 비슷한 시기다. 시인은 1986년 운동권의 한 계파인 제헌의회(CA)그룹 산하 번역팀에 들어가 10여 명과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번역했다. 1987년 검찰의 대규모 검거로 CA그룹은 와해됐고, 이후 출소한 CA의 리더가 “북한에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CA그룹은 PD(민중민주) 계열로 이어졌다. 임 의원이 속했던 NL(민족해방) 계열의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와는 노선이 다르다.

“그 남자는 제가 속한 조직의 수괴였어요. 운동권의 핵심이자 이론가였죠. 그는 김일성을 만나보고 싶어 했어요. 제게 일본을 통해 배로 (북한에) 들어간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밝혔죠. 그런데 저는 단번에 싫다고 했어요. 눈에 띄는 행동을 하기 싫었고 저는 겁도 많아요. 호호.”

시인은 끝내 ‘그 남자’의 실명은 공개하지 않았다. ‘북한에 다녀왔으면 지금 국회의원 하고 있는 것 아닌가’라고 농을 건네자 시인은 웃었다. “모르죠. 인생은 달라졌겠지만 그래도 작가가 되었을 것 같아요. 저는 글로 자신을 정리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거든요.”

시인은 “인터뷰에서 다 말하면 나중에 소설 어떻게 쓰느냐”고 웃으면서도, 박정희 정권 초기 원충연 대령이 주도한 반혁명사건에 참여한 군인 출신 아버지, 희귀질환을 앓다가 먼저 세상을 뜬 언니 얘기들을 해줬다. 이들 얘기는 언젠가 소설로 담길 것 같다.

고양=황인찬 기자 hi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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