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후폭풍]노무현 前 대통령의 저자세 논란盧, 南발표땐 “남북정상 한반도 비핵화 의지 확인했다”
그러나 공개된 회의록 전문에 따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총리회담, 국방장관회담에서 다루면 된다”며 구체적인 협의에 나서지 않으려 했다.
당시 남북정상회담은 북한 핵 문제 때문에 주목받은 측면이 크다. 노무현정부는 남북대화에서 핵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다며 국내에서 강한 비판을 받던 때였다. 이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이번에 가서 핵 문제 확실하게 이야기하고 오라는 주문이 많다. 그런데 그것은 판 깨지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주장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국민에게 안심시키기 위해서 핵 문제는 이렇게 풀어간다는 수준의 그런 확인을 한번 해주시면 더욱 고맙겠다”고 요청했다. 김 위원장은 답이 없었다.
노무현정부는 정상회담 이후 핵 문제는 이미 해결된 것인 양 남북, 북-미, 북-중-미를 연계하는 평화협정 체결에 속도를 냈다. 정전 상태인 국가들이 종전선언을 한 사례를 찾아내라는 명령이 당시 외교통상부에 하달됐다. 당시 중견 외교관은 “대선이 코앞에 있는데 차기 정부가 손대지 못하도록 평화협정 체결을 서두르는 건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라고 푸념했다. 이 무렵 ‘청와대가 남북관계에 대못을 박으려 한다’는 우려가 정부 안팎에서 나왔다.
2003년 초 건설이 중단된 신포 경수로 건설과 관련해 노 전 대통령은 “비위를 살피고 눈치를 보는 이유가 사대주의 정신보다는 먹고사는 현실 때문임을 잘 이해를 해주시면 좋겠다”고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경수로는 북한이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을 가동 중인 사실이 탄로 나면서 ‘제네바합의’가 무산돼 건설이 중단됐다. 귀책사유가 북한에 있는데도 한국 정부가 저자세를 보인 셈이다.
노 전 대통령은 김 위원장으로부터 ‘자주의 문제’를 연거푸 듣자 “우리가 미국에 의지해 왔다. 그리고 친미국가이다. 객관적인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측의 어떤 정부도 하루아침에 미국과 관계를 싹둑 끊고 북측이 하시는 것처럼 이런 수준의 자주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점진적 자주로 가자”고 했다.
정부는 2007년 10·4선언에 대해 “남북평화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며 대대적으로 성과를 내세웠다. 특히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서해평화지대를 논의한 것을 남북 정상 공동선언의 핵심이라고 홍보했다. 하지만 김 위원장은 황해도 해주를 활용하는 서해평화지대 안에 찬성한 게 아니라 국방회담을 통해 추가 논의해 보자는 원칙론만 밝혔다. 오히려 개성공단이 활성화되기 전에는 해주는 내줄 수 없음을 분명히 하기도 했다.
회담이 끝나기 직전 이재정 전 통일부 장관이 “위원장님 어떻게 이산가족들이 고향 방문 하도록 허락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라고 거듭 요청하자 노 전 대통령은 “이제 다음에 합시다. 오늘은 보따리가 넘쳐서 안 돼요”라며 스스로 화제를 바꿨다. 그러곤 다 함께 웃었다.
조숭호·고성호 기자 sh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