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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단 하루라도 좋으니

입력 | 2013-06-26 03:00:00


단 하루라도 좋으니
―박영희 (1962∼)

단 하루라도 좋으니
형광등 끄고 잠들어봤으면
누군가와 밤이 새도록 이야기 한 번 나눠봤으면
철창에 조각난 달이 아닌 온달 한 번 보았으면
단 하루라도 좋으니
따뜻한 방에서 한숨 푹 자봤으면
탄불 지핀 아랫목에서 삼십 분만 누워봤으면
욕탕에 들어가 언 몸 한 번 담가봤으면
단 하루라도 좋으니
흠뻑 비에 젖어봤으면
밤길 한 번 거닐어봤으면
단 하루라도 좋으니
잠에서 깨어난 아침 누군가 곁에 있어 주었으면
그리운 이의 얼굴 한 번 어루만질 수 있었으면
마루방 구석에서 기어 나오는 벌레들 그만 죽였으면
단 하루라도 좋으니
딸에게 전화 한 통 걸어봤으면
검열 거치지 않은 편지 한 번 써봤으면
접견 온 친구와 한 시간만 이야기 나눠봤으면
단 하루라도 좋으니
단 하루라도 좋으니
내 방문 내 손으로 열 수 있었으면


이 시가 실린 시집 ‘그때 나는 학교에 있었다’는 ‘시로 쓴 감옥에 대한 르포’다. 30년 동안 찾아올 사람 하나 없었던 장기수(長期囚), 사랑하는 사람과의 면회를 앞두고 교도관에게 인주를 얻어 입술에 바르는 수감 여성, ‘사회에서 산 날보다 이곳에서 산 날이 더 많은’ 전과 16범 등 갇혀서 사는 사람들의 고독과 몸부림과 체념과 ‘그는 왜 갇혔나’와 ‘그래도 살아가리라’가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여느 사람에게, 감옥에 갇힌다는 건 상상만 해도 무서운 일이다. 그 공포의 앞자리에는 거기 있는 사람들이 ‘나와는 전혀 다른’ 무서운 사람들이리라는 상상이 놓여 있다. 그 상상공포도 감옥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가진 큰 효과일 테다. 어떠한 이유로건 감옥에 갇힌 사람들은 불운한 사람이고 불행한 사람이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상상 못할 삶이 부지기수로 많다(대다수에 속하는 우리는 이 세상 상위 1% 사람들이나 하위 1%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없다). 시집 속의 사람들이 ‘왜 갇혔었나’, 21세기를 사는 마당에 한번 곰곰 생각해 봐야겠다.

누구는 ‘단 하루라도, 단 한 시간이라도’ 맛보기를 절절히 원하는 일상의 목록들. 당연한 것이어서 너무도 가볍게 누리는, 가령 ‘철창에 조각난 달이 아닌 온달’이 새삼 숙연하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