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 후폭풍]회의록에 나타난 김정일 협상 스타일
○ 김정일은 밀당(밀고 당기기)의 달인?
김 위원장은 상대의 비위를 건드리며 회담 분위기를 시작부터 주도했다.
정상회담 합의문에 대해서도 “(1972년) 7·4공동선언 때 기대를 걸었는데 정권 교체와 정세변화로 빈 종이짝이 되고 말았다. 우리가 이번에 합의본 문제를 다시 문서화하면 또 빈 종이짝이 되지 않겠나”고 비꼬았다. 이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김정일은 후계자 시절부터 30년 넘게 한국 대통령들의 성향을 파악해 왔을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의 승부사 기질을 미리 알고 자극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노 전 대통령이 여러 남북경협방안을 제안했지만 김 위원장은 그때마다 “총리급, 경제장관회담에서 다루면 되지요”라며 답변을 피해갔다. 또 “우리가 군대 칼은 쥐고 있지, 경제 돈은 못 가지고 있다”며 마치 자신의 권한이 아닌 듯 설명하기도 했다. 전영선 건국대 교수는 “김정일 자신이 답하기에는 의제의 수준이 낮음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북한의 핵심 관심사안인 북-미 관계개선과 평화협정 체결에는 적극적이고 공세적인 자세로 큰 관심을 보였다. 김 위원장은 “부시 대통령이 노 대통령에게 종전선언 문제를 언급했다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아주 의미가 있다. 평화문제를 논의할 기초가 마련될 수 있다”며 노 전 대통령의 노력을 주문하듯 발언했다. 개성공단이 1단계 시험단지에서 분양을 멈춘 것에 대해서도 “남측이 의지가 있었으면 더 빨리 나가는데, 남쪽 사람들에게 (괜히) 땅만 빌려준 거 아니냐고 인민들은 생각한다”고 압박했다. 그는 “군대가 우선 반대할 테고 경제 행위꾼들도 ‘아직 개성에서 맛도 못 본 주제에 뭣 때문에 해주를 또 내라고 (하나)’. 아마 안 할 겁니다”라며 단호히 배격했다. 마치 민주국가의 대통령이 ‘국내 여론 때문에 쉽지 않다’는 식으로 말하며 노 전 대통령을 농락한 셈이라고 정부 관계자는 전했다.
○ 선심 쓰듯, 내 잘못을 공동책임인 듯 말 포장
배석한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정상회담 결과 발표 형식에 대해 ‘아직 합의를 못했다’며 제지했지만 “6·15 때처럼 선언으로 하라”고 지시했다. 이재정 통일부 장관이 중국 베이징(北京)올림픽 남북공동 응원단 파견안을 건의하자 “의미는 무슨, 인기나 끌어서 뭐하게…”라며 면박을 주면서도 “그것도 정상이 합의했다 하지요, 뭐”라며 즉흥적으로 수용했다. 남북정상회담 정례화와 관련해서는 “수시로 협의한다(고 씁시다). 정례화라고 하면 우리 사람 다 이해 안 됩니다”라며 단어 하나까지 따졌다.
NLL을 서해상에서 지워버리겠다는 속내는 능수능란한 화술로 포장했다. 김 위원장은 “바다에 종잇장 그려놓은 지도와 같이 북방한계선은 뭐고, 군사경계선은 뭐고, 침범했다 침범하지 않았다, 그저 물 위의 무슨 흔적이 남습니까”라고 말했다. 이어 “전번에 서해사건 때도 실제로 흔적 남은 게 뭐야, 흔적 남은 게 뭐 있는가”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저 생억지, 앙탈질하는 게 체질화되다 보니까 50년 동안 자기 주의, 주장만 강조하고…”라고 비판했다.
1, 2차 연평해전 등을 북한이 일으켜놓고 마치 남북 모두에 그 책임이 있는 양 오도하는 특유의 말속임이다.
조숭호 기자·윤상호 군사전문기자 shcho@donga.com
▶ [채널A 영상]“NLL, 미군이 제멋대로 그은 유령선” 北 주장과 盧 발언 ‘닮은 꼴’
▶ [채널A 영상]박근혜 대통령 “NLL, 젊은이들 피와 죽음으로 지킨 곳”
▶ [채널A 영상]공개된 대화록 원문 보니…‘NLL 무력화’ 北 노림수에 넘어간 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