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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차지완]괴담에 휘둘리는 사회

입력 | 2013-06-26 03:00:00


차지완 사회부 차장

정부는 참 느렸다. 곁에서 지켜보기 답답할 정도였다. 5년 전 한국을 ‘무정부 공황상태’에 빠뜨렸던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시위에 허둥지둥하던 정부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드는 생각이다. 당시 촛불시위 사태에 책임을 지고 장관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힌 정운천 전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의 말은 지금도 생생하다.

“최근 석 달은 굼뜬 행정조직에 ‘속도전’을 벌이는 누리꾼 세력이 출현하면서 나라의 근간을 흔들었던 시기였습니다.”

실제로 그랬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으면 뇌가 뚫려 죽는다.” “미국 소로 만든 화장품만 발라도 광우병에 걸린다.” 광우병 괴담들이 초고속인터넷을 통해 광속으로 유포됐고, 이명박 정부에 심사가 뒤틀린 사람들의 마음을 잡아 흔들었다. 그렇게 픽션이 팩트를 압도하는 3개월간 사회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누리꾼의 속도전 앞에서 정부의 한 박자 느린 해명은 괴담 확산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관가에서는 “왜 정부의 공식 발표를 믿지 않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푸념이 흘러나왔다. 그러자 이명박 정부를 지지했던 보수진영 일각에서는 “나폴레옹인 줄 알고 청와대에 보냈는데 괴담에 대처할 능력도 전략도 없는 겁쟁이”라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괴담은 촛불시위 사태 이후 한국 사회의 고질병이 됐다. 연신내 살인사건, 쌍십절 중국인 인육매매, 목동 초등학생 납치사건 등 엽기적 괴담이 끊이질 않는다. 픽션에 휘둘리는 우리 사회의 취약성은 최근 페이스북에 오른 건국대 장기매매 괴담에서도 엿볼 수 있다. 어느 철없는 누리꾼이 올린 조작 글은 무려 6만 명으로부터 ‘좋아요’ 추천을 받으며 빠른 속도로 유포됐다. 경찰이 사실 확인을 거쳐 ‘허위’라고 발표하기까지 11시간 동안 6만 명이 퍼 날랐을 괴담 숫자는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2008년 촛불시위 때 괴담의 주요 유통 경로는 인터넷 커뮤니티였다. 지금은 카카오톡과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대신하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언제 어디서든 복사하기와 붙여넣기, 퍼뜨리기가 가능해졌다. 개인들이 구축한 ‘카톡 친구’라는 거대한 복잡계 네트워크를 통해 찌라시 정보를 사실상 온 국민이 ‘순식간에’ 돌려보는 시대가 됐다.

게다가 올해는 박근혜 정부 출범 첫 해여서 불법 시위와 집회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고되고 있다. 1998년, 2003년, 2008년에 모두 사회적 갈등과 불신이 고조되면서 불법 집회가 전년보다 큰 폭 증가했다. 사회적 불신이라는 자양분과 SNS라는 인프라가 마련되면서 괴담은 절호의 확산 기회를 맞았다. 불신의 단초를 제공한 게 혹시 정부는 아닌지, ‘굼뜬 행정조직’이란 표현이 지금도 들어맞는 말인지 현 정부가 심각하게 따져봐야 하는 이유다.

차지완 사회부 차장 c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