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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비상! 멸종위기… 제주 1급 야생식물 5종 씨가 마른다

입력 | 2013-06-27 03:00:00


한라산 정상 백록담의 검붉은 화산탄 바위에서 순백의 꽃이 피어났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식물 1급인 암매. 마치 화산탄 바위가 토해낸 진주처럼 하얀 꽃이 빛났다. 하지만 최근 확인한 암매 자생지 주변은 화산 토양이 계속 무너지고 있어 생존이 위태위태했다. 암매는 국내에서 제주도, 그중에서도 한라산 정상에서만 자생한다. 언뜻 보기에 풀처럼 보이지만 엄연한 나무. 키가 2, 3cm에 불과해 세계적으로 가장 키 작은 나무로 알려졌다. 암매는 빙하기에 남하해 한라산에 터를 잡은 식물로 제주 섬이 과거 한반도와 붙어 있었다는 것을 증명한다.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 야생식물 1급은 모두 9종으로 이 가운데 암매를 비롯해 나도풍란 만년콩 죽백란 풍란 한란 등 6종이 제주에 자생한다. 지난달 중순부터 한 달 동안 식물전문가 등과 함께 자생지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탐사에 나섰다.

○ 기로에 선 멸종위기 식물

제주 서귀포시 돈내코 계곡은 상록수가 울창한 곳으로 다양한 희귀식물이 자생한다. 만년콩을 찾아 나섰다. 연중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물웅덩이를 지나 깎아지른 듯한 절벽으로 올랐다. 서 있기 힘든 경사도에서 30∼40cm의 만년콩이 눈에 들어왔다. 꽃이 개화를 앞두고 있어서 귀한 열매를 조만간 맺을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만년콩 주변 흙이 무너지고 있어서 언제 사라질지 걱정이 앞섰다.

서귀포시 상효동 죽백란 자생지 복원은 수포로 돌아갔다. 2008년 인공적으로 증식한 죽백란 500여 그루를 자생지에 심었으나 지금은 한 그루도 찾아볼 수 없다. 인공 식재 이듬해부터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으나 곧바로 무분별한 도채가 이뤄졌기 때문이다. 나도풍란과 풍란의 자생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성산일출봉 암벽에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지금은 육안으로 관찰하기 힘들었다. 서귀포시 효돈천 하류인 쇠소깍 주변의 소나무에 인공 식재한 나도풍란에 꽃이 맺힌 모습만 관찰이 가능했다.

만년콩 자생지 부근의 한란 자생지는 그마나 보존이 제대로 이뤄졌다. 무분별한 도채와 남획 등으로 자취를 감췄던 한란이 극진한 보호 끝에 되살아난 것이다. ‘제주의 한란’은 1967년 단일 식물종으로는 처음으로 천연기념물 제191호로 지정됐다. 최근 한란 자생지 주변에 보호철책을 설치하고 무인경비 시스템을 가동해 겨울철 은은하게 퍼지는 한란의 향을 맡을 수 있다.

○ 체계적인 관리 필요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식물은 법정 보호종이지만 여러 차례 명칭이 바뀌면서 혼선을 주고 있다. 1989년 특정야생동식물을 처음 지정한 이후 1998년 멸종위기야생동식물, 보호야생동식물, 특별보호대상 멸종위기 야생식물 등으로 구분돼 오다 2005년 멸종위기 야생동식물로 정리됐다. 하지만 산림청에서도 희귀식물을 따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으며 불법 채취에 대해 야생동식물보호법, 문화재보호법 등으로 중복 적용을 하기도 한다.

정부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등 국제 규격에 맞춘 적색목록(Red List)을 최근 마련했지만 지역 전문가의 지원 없이 기존 자료를 취합, 정리한 수준으로 재정립이 필요한 실정이다. 무엇보다도 멸종위기 식물에 대한 관리와 감시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아 무단, 불법 도채에 무방비로 노출된 상태다. 제주도 한라산연구소 고정군 수목시험과장은 “귀중한 식물자원을 제대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멸종위기종관리위원회’ 등을 만들어 통일된 체계 속에서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