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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미야의 東京小考]박 대통령, 일본을 끌어들이도록 중국 설득해야

입력 | 2013-06-27 03:00:00

새시대 열려는 한국과 중국, 한중과 긴밀히 협력하는 미국… 급변하는 한반도서 일본만 배제
하지만 한중일 협력 없으면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 어려워
‘서울 프로세스’ 위해서라도 일본 끌어들여 함께 가야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주필

6·25전쟁이 발발한 지 63년이 지난 엊그제 나의 뇌리에는 10여 년 전에 본 한국 영화가 선명하게 떠올랐다. 장동건과 원빈이 열연한 ‘브러더후드’(원제: 태극기 휘날리며)다. 그 전쟁에서 적과 아군으로 찢어진 형제의 비극. 너무도 슬픈 이야기에 눈물을 감출 수 없었던 나는 한편으로 할리우드 영화 뺨치는 리얼한 전투 장면의 연속에 압도됐다.

이 영화를 안 봐도 알다시피 북한군이 평양까지 후퇴하자 갑자기 참전해 유엔군을 현재의 경계선까지 다시 밀어낸 것은 중국의 인민의용군이었다.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의 장남도 전투에 참가해 목숨을 잃은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중국과 북한이 ‘이와 입술의 관계’라고 일컬어지는 까닭이다. 중국이 참전하지 않았으면 한반도는 통일되지 않았을까.

그냥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새로운 국가 지도자가 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몇 년 전 부주석일 때 그 전쟁을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대항하는 정의의 전쟁이었다”며 “중국은 북한과 피로 맺어진 우정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 전투에 나섰던 중국 참전 군인들의 모임에서 한 말이라 오버했는지 모르지만 움찔해지는 발언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늘 그 시 주석과 베이징(北京)에서 회담한다. 중국과 국교를 연 지 21년째인 한국이지만, 대통령이 일본에 앞서 중국을 방문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게다가 많은 경제인을 동반한 방문을 중국 측은 대환영하고 있다.

북한과 ‘피로 맺어진 우정’은 어떻게 됐냐고 시 주석을 꼬집을 생각은 없다. 오히려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가 보란 듯이 박 대통령을 환대하는 중국을 나는 감개무량하게 보고 있다. 지금 김정은은 어떤 심경일까.

북한이 세 번째 핵실험을 단행한 뒤인 올 3월 중국의 한 북한 연구자와 도쿄(東京)에서 만났다. 그와는 지난해 가을 중국 선양(瀋陽)에서 알게 됐는데 당시 그는 시진핑 체제로의 전환에 따라 김정은 제1비서가 일찌감치 중국을 방문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근거도 댔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결국 김 제1비서가 중국보다 핵과 미사일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세 차례에 걸친 중국의 만류를 듣지 않고 지난해 말 장거리 탄도 미사일 발사에 이어 핵실험도 단행한 이상 그의 방중이 멀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중국이 북한에 엄한 태도를 취한 것은 알려진 대로다. 그도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며 중국이 진노한 근거를 세 가지 꼽았다.

첫째, 그만큼 진지하게 핵실험을 그만두도록 당부했는데도 들어주지 않았다. 둘째, 전례 없이 민중이 크게 분노했다. 베이징에서 북한대사관에 시위대가 몰려들었고, 인터넷에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그리고 셋째, 발족한 지 얼마 안 된 새 지도부가 찬물을 뒤집어썼다. 과연 이 정도라면 시 주석도 ‘피의 우정’을 챙길 계제가 아닐 것이다.

반대로 말하면 북한은 중국의 강한 분노를 사더라도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핵보유국의 길을 택한 것이다. 이 나라의 3대째는 “중국이 시키는 대로는 안 한다”고 아버지보다 강경하게 생각했던 게 틀림없다. 한반도의 긴장을 한껏 높여놓고 미국과의 직접 대화를 제안한다. 그런 시나리오를 그렸을 것이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과 시 주석은 잇따라 미국을 방문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회담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박 대통령의 방중이다. 그런 행보를 주시하면서 북한도 6자회담 복귀와 남북대화 자세를 내비치며 상대 전열을 흔들고 있다. 급박한 외교 흥정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움직임에서 배제돼 있는 것이 일본이다. 영토 문제와 역사 인식을 둘러싸고 당장 일중 관계도 일한 관계도 차가워져 있고, 5월에는 서울에서 준비하고 있던 일중한 정상회의도 연기됐다. 베이징에서 펼쳐지는 정상회담은 북한뿐만 아니라 일본에도 보란 듯한 행사가 됐다. 여기에서도 시대의 변화를 절감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무리 북한에 엄해졌다고 해도 중국이 마지막에는 그 나라를 지켜줄 것임에 변함이 없다. 민주주의 체제나 인권 문제에서 중국이 우리와 이질적인 국가인 점도 사실이고, 군사적 팽창은 많은 나라의 불안을 초래하고 있다. 박 대통령이 60년 전의 불행한 과거를 극복하고 중국과 지금 새로운 시대를 만드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일본의 과거만 계속 엄하게 추궁하는 것은 어떻게 봐야 할까.

일본에도 문제가 있는 것은 잘 안다. 하지만 ‘서울 프로세스’를 내걸고 동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바라고 있는 박 대통령이다. 이를 위해서는 오히려 일본을 끌어들이도록 중국을 설득해야 비로소 새로운 지도자로서의 명성이 세계적으로 높아질 것이다.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은 역시 한중일의 협력 없이는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와카미야 요시부미 일본국제교류센터 시니어펠로 전 아사히신문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