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질투심이 되레 성장에너지가 되는 ‘삶의 역설’
박찬옥 감독의 2003년 작 ‘질투는 나의 힘’에는 한 남자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를 두 번씩이나 빼앗긴 남자가 등장한다. 영국 유학을 준비하면서 주말에는 변기 뚫는 아르바이트까지 하면서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사는 대학원생 이원상(박해일)이다. 그에게는 아직까지 청년의 순수한 모습이 남아 있다. 자기 전공인 문학에 대해서는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있지만 세상살이에는 미숙함이 묻어난다. 삶의 과정에서 직면하는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그는 어떻게 할지를 몰라 그냥 멈춰 있곤 한다.
여자를 빼앗은 남자는 한윤식(문성근)이다. 그는 한 문학잡지사의 편집장이다. 아내와 딸이 있지만 다른 여자를 유혹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외모는 볼품없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에 능수능란함이 배어 있다. 그는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무엇을 선택해야 자신이 행복할지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저급한 욕망을 다른 사람에게 들켜도 죄책감 같은 것은 전혀 없다. 호텔에서 바람피우는 장면을 장인에게 들킨 순간에도 “후회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라고 뻔뻔하게 말하는 사람이다.
빼앗은 자에 대한 빼앗긴 자의 질투
두 번째 여자 박성연(배종옥·1인 2역)은 사랑을 시작하기도 전에 빼앗겼다. 한윤식의 잡지사에서 사진기자로 일하기로 한 박성연은 첫 번째 회식에서 만취한다. 이원상은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려고 머뭇거린다. 그 순간 한윤식은 과감하게 그녀를 택시에 밀어 넣고 함께 떠나버린다. 다음 날 새벽 한윤식의 집 앞을 찾아간 이원상은 그의 아내로부터 “어제 회식이 늦게 끝나 그 근처에서 바로 출근한다더라”는 이야기만 듣고 돌아온다.
그런데 한윤식에게 완전히 빼앗긴 줄 알았던 박성연이 어느 날 술에 취해 이원상을 자기 집으로 끌어들인다. 술을 마시고 소파에서 박성연과 키스를 나누던 이원상이 갑자기 엉뚱한 말을 꺼낸다. “편집장님이랑 자지 마요”라고. 사실 그날 이원상이 소파에서 간절하게 원했던 것은 박성연이 아니라 그녀의 약속이다.
“정말 그 사람이랑 자지 않는다고 나랑 약속해요. 약속! 약속! 약속!”
이원상은 그녀와의 잠자리만으로는 한윤식에 대해 가지고 있던 질투심을 떨쳐버리기에 부족했던 것이다. 한윤식과는 자지 않겠다는 그녀의 다짐이 있어야 이원상의 질투심은 보상받을 수 있다. 이원상은 한윤식을 한 번이라도 이겨보고 싶었던 것이다.
한윤식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원상도 그를 점점 닮아간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점점 편집장의 인생관과 의사결정 방식을 따라한다. 이원상은 자신의 아이를 임신한 하숙집 딸 안혜옥(서영희)이 결혼하자고 조르자 “결혼은 불가능해”라고 말하는 냉정한 사람이 돼 버린다. 결국 이원상은 한윤식의 집으로 들어가서 같이 살기 시작한다. 마치 그의 아들이 된 것처럼.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질투
이원상의 심리적 갈등과 갈등해결 과정은 지크문트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떠올리게 한다. 프로이트는 남자가 태어나면 3∼6세에 처음으로 이성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고 주장했다. 그 대상은 어머니다. 하지만 사랑의 기쁨도 잠시, 사내아이는 어머니가 이미 다른 남자의 여자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바로 자신의 아버지다. 아버지는 사내아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하게 되는 질투의 대상인 것이다. 아이는 어떻게든 어머니를 차지하고 싶지만, 아버지는 자신이 상대하기에 너무 강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버지를 물리치고 어머니를 차지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이런 이유로 아이는 극도로 불안해진다. 아버지가 언젠가는 자신의 숨은 의도를 알아채고 자신을 처벌할 것이라고 걱정하는 것이다. 프로이트의 주장에 따르면 아이는 아버지가 자신의 성기를 잘라내는 벌을 내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심리학에선 이를 ‘거세공포’라 부른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버지로 상징되는 사회의 문화와 규범을 내면화한다. 아버지에게 품었던 질투심을 자신이 속한 사회의 전통과 가치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질투심이 아이를 어른으로 성장시키는 힘으로 작동하는 셈이다.
이원상은 박성연에게 “(편집장님과는) 어차피 게임이 안 돼요. 전에도 그랬어요. 난 누나를 행복하게 해줄 수가 없어요. 난 그런 사람이에요”라고 이별을 통보한다. 그러곤 한윤식의 집으로 들어가 ‘작은 한윤식’으로서의 인생을 시작한다. 자신이 원하던 것을 가져간 사람, 그래서 질투심을 느꼈던 사람을 닮기로 한 것이다.
이원상에게 질투는 힘이 된다. 그는 한윤식에게 느꼈던 질투심을 일종의 에너지로 활용한다. 하지만 한 순수한 청년이 닳고 닳은 중년의 남자를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씁쓸하기만 하다. 아버지를 닮아가는 아이의 모습이 희망적으로 보이는 반면, 이원상이 쓸쓸해 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성장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원상의 모습은 기형도의 시집 ‘잎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1989년)에 실린 시 ‘질투는 나의 힘’ 중 몇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중략/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충남대 교수·심리학 wooyoung@c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