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석 찌꺼기로 신소재 개발” 의기투합 현장
현무암을 녹여 성형틀에 부은 뒤 특수 열처리를 해 만드는 제품으로, 마찰에 견디는 힘이 아주 강해 건물 내·외장재나 산업체의 배관 등에 쓰인다. 캐스트 바잘트의 천연원료인 현무암 가격은 kg당 1000∼1500원 정도다.
포스코 광양기술연구소 실험동에서 포스코와 동도바잘트산업 공동연구팀 팀원들이 슬래그를 녹여 만든 액체를 성형틀에 붓고 있다. 포스코 제공
○ 한여름 대장간 같은 실험동
포스코와 포스코 협력업체인 동도바잘트산업 직원들이 반년 넘도록 매일 2, 3회씩 반복하는 실험 현장의 모습이었다. 문외한의 눈에는 ‘신소재 개발 현장’이라기보다는 대장간을 방불케 하는 광경이지만, 연구원들은 “원료 배합비와 녹이는 온도, 용융액을 붓는 속도와 식히는 온도를 하나하나 다 조절해야 하는 아주 정교한 실험”이라고 입을 모았다. 방염복을 벗은 팀원들의 머리카락과 얼굴은 온통 땀으로 범벅이 돼 있었다.
포스코와 동도바잘트산업 공동연구팀이 한여름에 구슬땀을 흘리며 찾는 것은 산업용 자재인 ‘캐스트 바잘트(주조 현무암)’를 대체할 수 있는 제품이다. 제철소나 발전소의 배관 내부 등에 쓰이는 캐스트 바잘트는 전량을 수입하고 있으며, 동도바잘트산업은 이를 들여와 포스코와 한국전력 등에 시공을 해준다.
바잘트를 이루는 원소들은 공교롭게도 보통 ‘슬래그’라고 부르는, 제철 과정에서 나오는 광석 찌꺼기와 성분이 유사하다. 이 때문에 윤희수 동도바잘트산업 회장은 10년 전부터 ‘슬래그를 이용해 캐스트 바잘트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 왔다. 그 구상이 실현된다면 kg당 2000원에 이르는 비싼 비용을 내지 않고 제품을 더 싸게, 더 빨리 만들 수 있다. 문제는 직원 수십 명 규모인 이 회사가 수천 번 반복해야 하는 실험 비용과 인력을 감당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 ‘낚시 기술을 같이 개발합시다’
포스코는 협력업체들에 “고기를 줄 게 아니라 고기 잡는 법을 전수해 주자”는 취지로 ‘테크노 파트너십’이라는 이름의 동반성장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포스코의 박사급 전문 인력이 직접 포스코 협력업체를 찾아가 고충을 듣고 기술 컨설팅을 해 주도록 하고 있다. 동도바잘트산업을 찾아온 사람이 우 원장이었다. 캐스트 바잘트를 살펴본 우 원장은 누가 귀띔해 주지도 않았는데 “이거 슬래그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물었고, 윤 회장은 뒷날 “그 순간 전율이 일었다”고 고백했다.
포스코 기술연구원에서 먼저 슬래그로 캐스트 바잘트를 만들 수 있는지 없는지 가능성을 시험했고, 여기서 ‘되겠다’는 확신을 얻은 포스코가 동도바잘트산업 측에 광양기술연구소 안에 상주하는 연구팀을 같이 꾸리자고 연락했다. ‘원청업체로서 고기 낚는 법을 전수해 줄 테니 잘 갈고닦으라’는 주문을 넘어, ‘서로 파트너 관계로 고기 낚는 법을 함께 개발해 보자’는 제안이었다.
윤 회장은 “‘연구개발 성과를 포스코가 다 가져가면 어떡하나’ 하는 우려도 없지 않았는데 포스코가 처음부터 사업화는 동도바잘트산업이 하고 특허는 공동으로 출원하겠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 “연간 170억 원” 효과 기대
동도바잘트산업은 내년 하반기 중 포스코와 함께 연간 생산량 6000t 규모의 생산공장을 착공할 예정이다. 설계는 포스코 엔지니어링연구센터가 맡는다. 동도바잘트산업은 이 공장이 본격적으로 생산에 들어가면 연간 50억 원의 매출 증대 효과와 120억 원의 수입원료 대체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사는 이후에 공장을 확장해 해외 시장으로도 제품을 수출하겠다는 구상이다.
대체원료로 만든 바잘트 제품 수익은 동도바잘트산업이 가져가지만 포스코도 얻어가는 이익이 있다. 매년 발생량이 증가해 골칫덩이였던 슬래그를 유용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포스코 광양기술연구소 관계자는 “포스코와 동도바잘트산업의 협업은 협력업체와의 동반성장을 통해 원청회사도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광양=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