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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박성원]유엔사와 코리아 이니셔티브

입력 | 2013-06-28 03:00:00


박성원 정치부장

1950년 6월 27일 유엔 안보리는 북한 인민군의 전면 남침과 관련해 전체 회원국에 대해 ‘무력공격을 격퇴하고, 국제평화와 안전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원조를 제공할 것’을 권고하는 결의 제83호를 채택했다. 이어 7월 7일에는 미군 주도의 통합군사령부(유엔사령부) 설치를 가능케 하는 안보리 결의 84호가 통과됐다.

‘대북 결의 82호’의 통과는 소련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고 회의에 불참했기에 가능했다. 스탈린은 미중 간의 전쟁을 유도해 새롭게 성장하는 중국을 미국의 화력에 불타게 만들고, 미국을 중국이라는 늪에 빠뜨림으로써 독점적으로 유럽의 패권을 장악하려 했다.

같은 해 1월 12일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애치슨 선언’을 통해 자국의 방어선에서 대만 한국을 제외하고 중국 신장(新疆) 지역과 만주에 대한 소련의 야심을 폭로했다. 스탈린과 중국 마오쩌둥 간의 갈등·마찰이 고조되기를 노린 것이다(‘이세기의 중국관계 20년, 2012’).

하지만 결과는 트루먼의 뜻대로 되지 않고 북한의 김일성과 스탈린에게 남침의 기회만 제공한 꼴이 됐다. 미-중-소 지도자들이 구사한 이간책과 음모가, 기회를 엿보던 김일성의 남침 계획과 맞물리면서 대한민국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다. 이런 상황에서 유엔의 깃발 아래 미군 주도의 21개국 연합군이 대한민국에 발을 디딜 수 있게 한 것이 안보리 결의 84호였던 것이다.

신선호 유엔주재 북한 대사는 21일 기자회견을 열고 유엔군사령부 해체와 정전협정의 평화협정으로의 대체를 주장했다. 동북아 평화에 최대 위협이 되고 있는 핵개발을 포기하라는 국제사회의 요구를 외면한 채 미군 철수를 겨냥한 유엔사 해체와 평화협정이라는, 60년 된 낡은 레코드판을 들고 나온 셈이다. 30여 년 전 일본 도쿄대에서 미국 중국 소련에서 나온 자료들을 수집·연구해 ‘마오쩌둥·스탈린 간의 갈등과 한국전쟁’이라는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을 썼던 이세기 전 국토통일원 장관의 말이다.

“김정은 체제의 북한은 중국과 달리 김일성 김정일 체제의 북한에서 한 발짝도 변화·진화할 수 없다. 덩샤오핑처럼 마오쩌둥 시대를 공칠과삼(功七過三·공이 7할에 잘못이 3할)으로 평가하며 이전 시대의 과오를 시인하는 데서 개혁·개방이 시작될 수 있는데, 3대 세습 독재자 김정은은 이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북한 스스로의 변화가 불가능하다면 대한민국의 안보환경을 우리 스스로 바꿔 나갈 수밖에 없다. 마침 변화의 여건은 조성되고 있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의 특사 격인 탕자쉬안 전 외교담당 국무위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방중을 앞두고 최근 방한했을 때 이렇게 말했다. “한중 정상회담은 중국에 미-중 정상회담, 중-러 정상회담과 함께 중요한 3대 정상회담이다.” 집권 2년째를 맞도록 북-중 간 정상회담 한 번 하지 못한 김정은으로서는 21년 전 한중 수교 때 김일성이 받았던 충격에 버금가는 쇼크를 받았을 법한 얘기다.

5년 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명박 대통령의 첫 중국 방문 기간에 “한미동맹은 냉전시대의 유물”이라며 ‘손님 불러놓고 뺨 치듯’ 한국에 대한 불편한 심경을 여과 없이 표출한 일이 있다. 박 대통령의 어제 방중은 중국 정부 인사들과 언론으로부터 ‘라오펑유(老朋友·오래된 친구)’라는 환대와 찬사를 받으면서 막을 열었다. 미국의 조야 인사들 사이에서도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과의 협조에도 한국이 적극적 주도적 역할을 할 때가 됐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나오는 상황이다. 63년 전 주변 강대국 지도자들의 음모와 오판 속에 벼랑 끝에 내몰렸다가 유엔사의 깃발 아래 기사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던 대한민국의 어제를 돌이켜보면 가히 격세지감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한국이 동북아의 새로운 판짜기 국면에서 ‘코리아 이니셔티브 디플로머시(한국 주도 외교)’를 실질적으로 이뤄낼 수 있을 것인지는 박 대통령의 리더십과 국민의 총체적 역량이 여하히 발휘되느냐에 달려 있음은 물론이다.

박성원 정치부장 sw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