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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뒷談]기능 대표선수 훈련장, 왜 이렇게 시끄러운걸까?

입력 | 2013-06-29 03:00:00

기능올림픽 국가대표 24시




19일 인천 부평구 구산동 글로벌숙련기술진흥센터에서 훈련 중인 은성현 선수(왼쪽)와 권진희 선수. 둘은 7월 2일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개막하는 제42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각각 ‘통신망 분배 기술’과 ‘헤어디자인’ 직종의 한국 국가대표로 출전한다. 둘은 시차적응 훈련 첫날인 19일부터 20일까지 24시간을 뜬눈으로 보냈다. 인천=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우승이 제일 쉬웠어요.^^’

2011년 10월 13일 오후 인천국제공항 입국장에 이런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얼핏 봐서는 잘나가는 스포츠 종목 선수들의 개선을 반기는 표현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날 플래카드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영국 런던을 출발해 이날 도착한 제41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World Skills 2011) 국가대표 선수단이었다. 한국은 이 대회에서 금메달 13개 등 총 25개의 메달을 획득했다. 대회에 참가한 51개 나라 가운데 종합 1위. 역대 대회를 통틀어 17번째 우승이었다. ‘우승이 제일 쉬웠다’는 플래카드 문구가 딱 맞아떨어져 보였다. 그러나 환한 표정으로 입국장에 들어서던 선수들의 표정은 플래카드를 바라보자 싸늘하게 변했다. 속으로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26회 출전에 17회 우승, 9연패, 출전 선수 전원 입상…. 한국이 기능올림픽 역사에 남긴 기록은 전무후무하다. 국내에서는 “출전만 하면 우승은 떼어 놓은 당상”이라는 인식이 많다. 하지만 기능올림픽 관계자와 선수들은 “그렇지 않다”며 고개를 가로젓는다. 오히려 그런 ‘칭찬 아닌 칭찬’에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7월 독일 라이프치히 국제기능올림픽 조적(벽돌쌓기)에 출전하는 김영욱 선수가 ‘금메달을 딴 뒤 박근혜 대통령과 기념촬영을 하겠다’는 각오를 담은 표어. 인천=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태릉선수촌 뺨치는 훈련

20일 오전 1시 인천 부평구 구산동 글로벌숙련기술진흥센터. 7월 2일부터 6일간 독일 라이프치히에서 열리는 제42회 국제기능올림픽대회(World Skills 2013)에 출전할 국가대표 선수단이 머무는 숙소다. 스포츠로 치면 ‘태릉선수촌’인 셈이다. 1967년 기능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지 46년 만에 처음 생긴 전용 훈련장이다. 이전에는 서울 시내 고교 등을 전전하며 훈련했다.

평소 같으면 불을 끄고 모두 꿈나라에 갔을 시간이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건물 대부분에 환하게 불이 켜졌다. 선수들이 있는 훈련장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시계가 막 1시를 넘어갈 무렵 정적을 깨는 함성이 울려 퍼졌다.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금메달만이 유일한 희망이다. 파이팅! 파이팅! 파이팅!”

대회가 열리는 독일 라이프치히는 한국과 7시간 시차가 난다. 출국일(29일)을 열흘 앞두고 이날 시차적응 훈련이 시작됐다. 이곳에서 합숙훈련 중인 17개 직종, 18명의 선수는 19일 오전 6시에 기상해 꼬박 24시간을 뜬눈으로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첫날을 보내야 ‘오전 취침, 오후 기상’(한국시간 기준)이 몸에 배기 때문이다. 20일 0시 ‘두 번째’ 저녁식사를 마친 선수들은 이처럼 구호를 외친 뒤 훈련을 시작했다.

기능올림픽에 맞춰 선수들이 장기간 합숙훈련을 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특히 2009년부터 실시한 시차적응은 한국의 비밀 훈련 가운데 하나다. 이 훈련을 도입한 뒤 치른 두 차례 대회에서 한국은 각각 금메달을 13개씩 땄다. 이는 2001년 한국이 주최한 대회를 제외하고 18년 만에 가장 많이 딴 금메달 수다. 대회장에서 외국 심사위원들은 “도대체 한국 선수들은 왜 이리 쌩쌩하냐?”며 궁금해할 정도다. 그럴 때마다 우리 선수단 관계자들은 시치미를 뗐다.

이날 훈련장마다 어김없이 시끄러운 팝송이나 영어회화 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른바 현장 적응 훈련이다. 대회장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미리 체험하기 위해서다. 마치 양궁선수들이 소음 적응을 위해 야구장 등에서 실제 활을 쏘는 것과 같은 방식이다. 또 대회 공인 언어인 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실제로 각국 심사위원들이 현장에서 선수들에게 수시로 질문을 던지곤 한다. 실력이 뛰어난 한국 선수들에게는 ‘견제용’ 질문이 잦은 편이다. 이에 대비해 훈련장 벽면에는 자신의 종목을 담당할 외국 심사위원들의 사진이 빼곡히 붙어 있다. 얼굴을 알아 놓으면 현장에서 덜 당황하기 때문이다.

대회 준비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훈련장 안팎으로는 이중 삼중의 보안이 유지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외부인의 접근이 철저히 금지된 곳이 있다. 바로 피부미용 훈련장이다. 이날도 문을 꼭 잠근 채 훈련이 진행 중이었다. 김흥식 한국산업인력공단 기능경기팀 차장은 “지금 안에서 프랑스 여성 한 명이 거의 전라(全裸) 상태로 피부미용을 받고 있다”고 조용히 말했다. 커트나 파마 기술을 경쟁하는 헤어디자인은 실제 대회에서도 마네킹을 이용해 경쟁을 벌인다. 그러나 얼굴과 몸 전체에 손을 대야 하는 피부미용은 마네킹을 쓸 수 없다. 오로지 진짜 ‘사람’을 써야 한다. 그것도 여자만 가능하다.

실제 대회에서도 주최 측이 선발한 일반인 여성 수십 명이 모델로 나선다. 이들은 넓은 대회장에서 팬티 한 장만 걸친 채 마사지용 침대에 오른다. 선수들은 ‘얼굴과 몸의 노폐물을 얼마나 깨끗하게 지웠나’ ‘매니큐어나 페디큐어를 얼마나 정확하게 발랐나’ ‘마사지는 얼마나 부드럽게 이뤄졌나’ 등을 겨룬다.

한국은 2011년 런던 대회에 이어 피부미용에 두 번째로 출전한다. 김나래 선수(21·여)는 “대회 때 얼굴이 예쁘고 몸매가 좋은 모델을 만나면 좋지만 그야말로 100% 운에 맡길 수밖에 없다”며 “일주일에 두 번씩 외국인 모델을 대상으로 계속 훈련을 해서 자신 있다”고 말했다.



헝그리 투혼 고집은 옛말

전체 41명의 선수 가운데 글로벌숙련기술진흥센터에서 합숙훈련을 받는 선수는 18명. 나머지는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롯데호텔 등 소속 회사에서 훈련을 받는다. 출전 선수들의 나이는 18∼22세. 기능올림픽 출전 제한이 만 22세까지다. 이제 갓 고등학교를 졸업했거나 대학 1, 2학년 나이로 어느 때보다 가장 놀고 싶을 시절이다.

그러나 이들은 오전 6시에 기상해 오후 11, 12시까지 훈련하는 생활을 5개월째 반복하고 있다. 물론 작은 ‘일탈’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일부 선수의 훈련장 벽에는 ‘반성문’이 붙어 있다. 관계자 몰래 무리를 지어 외출을 나가려다 적발됐을 때 작성한 것이다. 대회를 코앞에 둔 지금 선수들은 오히려 반성문을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선수들은 자신만의 다짐을 새긴 표어로 훈련장을 장식해 놓았다. 조적(組積·벽돌 쌓기) 직종의 국가대표인 김영욱 선수(18)의 경우 ‘7월엔 대통령과 사진을 찍는다’는 문구를 붙여놓았다. 헤어디자인 권진희 선수(21·여)는 ‘초심으로 돌아가자! 그 간절함으로, 눈 부릅뜨고 빠샷!’이라는 통통 튀는 표어를 만들었다.

과거 기능올림픽 입상자들은 ‘찢어지는 가난을 이겨낸’ 감동 스토리의 주인공이 많았다.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훈련에 몰두하는 선수들의 얼굴에서는 ‘절박한 비장감’보다는 ‘진지한 열정’이 느껴진다. 선수들과 합숙을 같이하는 윤상인 한국산업인력공단 기능경기팀장은 “금메달을 많이 따는 것보다 모든 선수가 시상대 어느 자리에라도 서는 것이 우리 선수단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시기와 부러움 동시에 받는 한국

한국의 첫 기능올림픽 도전은 1967년 제16회 스페인 대회였다. 한국은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금메달 2개 등 5개의 메달을 땄다. 1977년 23회 네덜란드 대회 때 한국은 12개의 금메달을 따 일본 스위스 등 전통의 강국을 물리치고 마침내 첫 우승의 영광을 안았다. 이후 1991년까지 한국은 초유의 9연패를 달성했다. 1970년대만 해도 기능올림픽 입상자들은 서울 한복판에서 카퍼레이드를 펼쳤다. 또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오찬을 하고 직접 훈·포장을 받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영애로서 직접 입상자들에게 금일봉을 수여하기도 했다.

카퍼레이드는 없어졌지만 청와대 오찬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기능올림픽 자체에 대한 일반의 관심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시들해졌다. ‘우승이 제일 쉬웠다’는 표현에 선수들이 실망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실 기능올림픽 국가대표가 되는 것부터 하늘의 별 따기다. 우선 매년 시도별로 열리는 지방기능경기대회에서 입상해야 한다. 지방대회 참가자만 해도 8000여 명에 이른다. 입상자들은 다시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우열을 가른다. 여기서 1, 2위 입상자만 국가대표 선발전에 나선다. 기능올림픽이 2년마다 한 번씩 열리기 때문에 2년간 1, 2위 입상자 4명 가운데 단 한 명의 국가대표를 뽑는 것이다. 전국대회 입상자라고 모두 선발전에 나서는 것은 아니다. 국내 대회는 나이 제한이 없지만 기능올림픽은 만 22세까지로 제한돼 있다. 입상자의 나이가 많을 경우 차점자가 선발전에 참가할 수 있다. 이런 조건 때문에 사실상 기능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는 기회는 단 한 번에 불과하다. 체육올림픽처럼 선수 개인이 2연패, 3연패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입상자에게는 훈·포장과 포상금이 주어진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0년 체육올림픽에 비해 기능올림픽 차별 논란이 불거지면서 입상자 포상금이 현재 수준(1000만∼6720만 원)으로 늘어났다. 또 해당 분야의 산업기사 자격시험이 면제되고 남자는 산업기능요원으로 편입돼 병역을 대체할 수 있다. 체육올림픽 메달리스트에게 지급되는 연금과 비슷한 계속종사장려금 제도도 있다. 입상 후 동일 분야에서 1년 이상 일하면 첫해 280만 원에서 시작해 단계적으로 연간 최고 1200만 원을 지원한다.

한국에서는 기능올림픽에 대한 관심이 크게 낮아졌지만 해외에서는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2004년 32개에 불과했던 기능올림픽 회원국은 지금 65개로 늘어났다.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거치며 해외에서는 기능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특히 중국과 차기 대회 개최국 브라질 등의 관심이 뜨겁다. 중국의 경우 기능올림픽을 전문으로 분석하는 기관까지 설치할 정도다. 이 국가들에 한국은 아직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 도저히 극복하기 힘든 상대를 일컫는 표현)이다. 그만큼 대회 때마다 한국을 제치기 위한 보이지 않는 견제의 수위도 높아지고 있다.

윤 팀장은 “사실상 모든 나라의 선수들이 한국 선수를 이기기 위해 나온다고 보면 된다”며 “상상을 뛰어넘는 경쟁을 통해 메달의 영광을 안고, 입상에 실패해도 출전 자체만으로 대단한 것임을 국민들이 알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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