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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이슈]“웹툰은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틀렸다”

입력 | 2013-06-29 03:00:00

웹툰 돌풍 ‘미생’ ‘은밀하게 위대하게’ 작가 동반 인터뷰




2013년 데뷔한 지 20년이 된 ‘미생’의 윤태호 작가(왼쪽)와 6년 후배인 ‘은위’의 훈 작가. 최혁중 기자 sajinman@donga.com

외환위기 이후 몰락했던 만화가 웹툰을 중심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웹툰을 보는 사람이 늘고 이를 원작으로 한 영화, 드라마도 줄줄이 나온다.

윤태호(44)와 훈(본명 최종훈) 작가 두 사람은 요즘 웹툰 인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이다. 윤 작가는 포털사이트 다음에서 누적 조회수 4억 회를 돌파한 ‘미생’을 그리고 썼다. 영화 ‘이끼’의 원작도 그의 작품이다. 2010년 개봉한 ‘이끼’는 341만 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5일 개봉한 ‘은밀하게 위대하게’(은위)는 훈 작가의 동명 웹툰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다. ‘은위’는 앞서 ‘이끼’가 가지고 있던 웹툰 원작 영화 흥행 기록을 깼다. 개봉한 지 한 달도 안 됐지만 누적 관객 수는 630만 명을 넘어섰다.

인터뷰를 요청하면서 과연 이 두 사람을 한자리에 모을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 윤 작가는 다음 달 연재가 끝나는 ‘미생’의 막바지 작업으로 바쁘다. 훈 작가도 ‘은위’의 성공으로 인터뷰 요청이 밀려 있다.

그러나 섭외 과정에서 두 사람은 서로에게 ‘미끼’가 됐다. 경기 성남시에 사는 윤 작가는 “훈 작가의 속내가 궁금했다”며 흔쾌히 허락했다. 평소 집이 있는 경기 부천시에서만 인터뷰를 했다는 훈 작가는 “윤 선생님을 뵙는데 언제든, 어디인들 못 가겠느냐”며 반겼다. 두 사람은 25일 성남과 부천의 중간쯤 되는 서울 남산 애니메이션센터에서 기자와 만났다.

모바일 영화 ‘미생 프리퀄’은 웹툰에서 다루지 않은 숨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래 사진은 장그래 역의 시완(왼쪽)과 오차장 역의 조희봉. 다음커뮤니케이션 제공

만화의 부활 vs 만화의 위기

초반 대화의 주된 화제는 ‘은위’의 흥행 돌풍을 비롯한 웹툰 영화 트렌드였다. 올해 개봉한 영화 중 ‘전설의 주먹’과 ‘더 파이브’가 웹툰이 원작이다. 이 밖에 ‘목욕의 신’ ‘신과 함께’ ‘보톡스’를 비롯한 10편이 넘는 웹툰이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 웹툰 원작 드라마 제작도 늘었다. 이유가 뭘까.

윤태호=소설 원작의 영화나 드라마는 많지 않나. 이 분야(영상)는 늘 새로운 이야깃거리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다만 웹툰의 역사가 오래 되지 않다 보니 비교적 최근에 (영화화하는) 시도가 늘어나기 시작한 것 아닐까.

훈=영화 쪽 시나리오 인력이 없다고 하더라. 인기 웹툰 중에는 신선한 소재가 많은 데다 대중성이 검증된 것이어서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웹툰은 장면이 나뉘어 있어서 화면으로 옮기기 쉬울 것 같다.

윤=그게 오히려 상상력에 장애가 될 수도 있다. 다만 인기 순위 같은 걸 파악하기 쉽다 보니 시장조사가 가능하다는 건 장점이다.

―인기 웹툰 원작 영화라고 모두 성공한 건 아니다.

훈=은위의 경우 제작사가 판권 계약 이전부터 이 작품에 집중할 거라는 믿음을 줬다. 실제로 기획부터 촬영, 편집 과정까지 제작사, 감독, 배우 등과 여러 차례 커뮤니케이션을 했다. 그 과정이 어느 정도 흥행에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윤=제작사든, 감독이든 누구 하나가 어떻게 만들 것인지에 대한 분명한 비전을 갖는 게 중요하다. 인기 작품이니까 영화화해도 성공할 것이라는 식으로 접근하면 실패한다.

―1990년대 만화 부흥기가 웹툰으로 재현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훈=외국은 출판 만화 시장을 메인으로 본다. 그런데 한국은 그 시장이 사라진 상태에서 웹툰이라는 새 시장을 발명한 셈이다. 만화계에서 지금처럼 많은 작가군이 형성된 적이 없다. 시장이 너무 급격히 커져서 무서울 정도다.

윤=판이 요동치고 있다. 앞으로 2, 3년 정도가 만화계에서 중요한 시기가 될 것 같다. 핵심적인 과도기라고 본다. 요새 웹툰 만화 유료전환 문제 등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디지털 환경 속에서 유통업계와 창작자, 독자 사이의 질서를 정하는 건데 그 토대를 어떻게 쌓을지가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영화 ‘은위’ 속 주인공들은 성격은 물론 옷차림까지 웹툰의 설정을 그대로 따랐다. 아래 사진은 원류환 역의 김수현(왼쪽)과 리해랑 역의 박기웅. 쇼박스 제공

우리는 로열패밀리?

두 사람은 나이 차가 열 살 정도(훈 작가는 본인의 나이가 밝혀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나지만 만화가로서 출발은 닮았다. 웹툰이 생겨나기 이전 출판 만화에서 시작한 것이나 ‘허영만 패밀리’라는 것도 공통점이다.

올해로 데뷔 20년을 맞는 윤 작가는 1988년 허영만 화백의 문하생으로 만화에 입문했다. ‘누구보다 잘 그린다’고 자부했으나 가난으로 미대 진학을 포기해야 했던 열아홉 살, 무작정 상경했다.

훈 작가는 “만화가를 직업으로 여기지 않는” 고지식하고 가난한 집에서 뛰쳐나와 무작정 김수용 작가 문하생으로 들어갔다. 만화 ‘힙합’으로 유명한 김수용 작가는 허영만 화백의 제자인 김준범 작가의 제자. 그래서일까. 데뷔 연도는 1993년(윤)과 1999년(훈)으로 차이가 크지 않건만 훈 작가는 윤 작가를 꼬박꼬박 ‘선배님’이 아닌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훈 작가는 “족보로 따지면 스승의 스승인데 당연히 선생님으로 불러야 한다”고 했다.

―만화계에선 위계질서가 엄격한 편인가.


윤=요즘엔 그런 거 없는데 얘네 화실이 그런 것 같다(웃음). 다 경쟁자다. 개인적으로는 이 구조가 더 편하다. 예전 같으면 ‘화석’이 됐을 텐데 지금은 현역 아닌가.

훈=‘호랑이가 고양이 새끼를 낳진 않는다’가 내 지론이다. 뿌리를 챙기는 거다. 스무 살에 김수용 선생님을 처음 찾아갔을 때도 이미 족보를 조사한 상태였다. 스스로를 ‘로열패밀리’라고 부르고 다닌다(웃음).

―두 사람 모두 출판 만화 출신이다. 출판 만화와 웹툰은 많이 다른가.

윤=출판 만화 문하생 출신들은 아무래도 그림 위주로 배우다 보니 이야기보다는 그림에 힘이 쏠려 있다. 하려는 이야기에 맞춰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자신이 잘 그릴 수 있는 분야의 이야기를 쓰는 거다. 반면 웹툰에서 출발한 만화가들은 그림이 어색해도 뭘 그리려고 하는지가 분명한 편이다.

훈=처음에는 웹툰으로 와서 고생했다. 출판 만화 출신에 비해 웹툰으로 데뷔한 작가들의 그림이 유치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버릴 건 버리고, 취할 건 확실히 취하는 거다.

―반대로 출판 만화 출신의 강점이 있다면…?

훈=지구력과 인내심? 문하생으로 들어가서 똑같은 선과 사물의 모습을 몇 달간 반복해서 그리며 보냈다. 그땐 이걸 왜 할까 했는데 이제야 그 의미를 알 것 같다. 지난한 과정을 통해 이 바닥에서 끝까지 견딜 사람을 걸러내는 거였다.

도제 시스템으로 단련된 덕분인지 두 사람 모두 작업량이 많은 편이다. 훈 작가는 첫 웹툰 ‘데쟈뷰’(2006년)를 시작으로 ‘샴’(2007년) ‘향연상자’(2009년) ‘은밀하게 위대하게’(2010년) ‘흩날리는’(2010년) ‘지옥에서 웃어라’(2010년) ‘해치지 않아’(2011년)를 꾸준히 발표했다. “작업에 들어가면 하루 열다섯 시간 이상 작업에 매달린다”는 그는 “체력 소모를 막기 위해 다른 곳에 물리적 힘을 소비하는 일을 최대한 지양한다”고 했다.

윤 작가는 ‘야후’(1998년) ‘수상한 아이들’(1999년) ‘로망스’(2001년) 등 수많은 출판물과 웹툰 ‘이끼’(2007년) ‘미생’(2012년) 등을 발표했다. 그의 작업량은 동료 만화가들마저 혀를 내두를 정도다. 작품에 들어가기 전 치열하게 취재를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미생’은 독자들로부터 ‘작가가 대기업 경험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만큼 리얼리티에 충실하다. 하지만 평생 회사를 다녀본 적이 없다는 작가는 “과장과 부장 중 어느 쪽이 더 높은지 몰랐을 정도”로 무지했다. 요즘도 “일주일 중 사흘만 잠을 잔다”는 윤 작가는 “지금부터 60세까지 만화를 한다고 가정해도 잘해 봐야 4, 5개 작품을 더 할 수 있을 정도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은데 시간이 없으니 문제”라고 했다.

인터뷰 끝에 두 사람에게 서로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윤=본인만의 독특함이 있으면서도 대중적인 콘텐츠와 스토리 구성능력, 그림체를 갖췄다. 특히 굉장히 섹시한 코드의 스토리 구성능력이 있다. 타고난 것 같다.

훈=선생님은 만화가들 사이에서 ‘태호신’으로 불린다. 40대 중반에 10대의 에너지가 나온다. ‘이끼’가 성공하고 그 이상은 어려울 거라는 시각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것 이상인 ‘미생’이 나왔다.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었다. 심지어 사이보그설도 있다.(웃음)

윤 작가는 다음 달 중순 ‘미생’ 145수를 끝으로 1년 6개월간의 연재를 마감한다. 최근 모바일 영화 ‘미생 프리퀄’로 제작된 ‘미생’은 조만간 드라마로 만들어질 예정이다.

“영화가 관객 500만 명을 돌파하면 시즌 2를 그리겠다”고 공언한 훈 작가는 약속대로 내년부터 시즌 2를 연재하기로 했다. ‘은위’에 이어 또 다른 작품 ‘해치지 않아’도 영화로 제작된다.

구가인 기자 comedy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