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에필로그/심재명 지음/176쪽·1만1500원/마음산책
가난한 집 4남매의 맏딸로 헌신적인 엄마를 ‘새끼 악마’처럼 부려먹던 저자. 결혼해 예쁜 손녀를 안겨드리며 효도할 즈음 엄마는 희귀 병에 걸렸다. 근위축성측삭경화증. 흔히 루게릭병이라고 한다. 결국 영화 ‘사생결단’을 만들던 7년 전 어느 날 임종도 못하고 엄마를 떠나보냈다. 손녀 씻긴 물로 세수도 하고, 걸레도 빨고, 화초에 물도 주던 그 엄마.
담백하지만 우아한 그의 영상언어를 지면에 옮겨 놓은 듯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펜 끝이 날카롭다. 누군가에게 속마음을 들킨 것처럼 가느다란 감정의 실을 풀어 내 이야기를 엮어 가는 솜씨가 좋다. ‘친한 친구 한 명 제대로 없이 공상과 상상에 빠져 흐물거리는 낙지처럼 꿈틀대는 십대’, ‘어느 날 문득 늙어 있는 게 아니라 한 가지씩, 낱낱이 확인 도장을 받듯이 스스로 늙음을 증명한다’ 같은 문장이 그렇다. 그러고 보니 국문학과 출신에 영화사 카피라이터를 지냈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