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애하는 인간/스티븐 아스마 글, 그림/노상미 옮김/320쪽·1만5000원/생각연구소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이 마지막 문장엔 분명한 메시지가 하나 숨겨져 있다. 가족 친구 지인…. 이들마저 다를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은 최소한 타인보다는 비슷하거나 공유하는 게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로빈슨 크루소처럼 혼자 살지 않는 이상, 인간은 ‘관계의 정도’에 따라 관심도와 신뢰도가 차이날 수밖에 없다. 왜 아니겠나. 친구 셋이 길을 가도 편이 갈리는 게 인간사의 현실인데.
이러니 우리네 평범한 인간들은 맘 놓고 편애 좀 해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여기서 또 하나의 거대한 장벽이 등장한다. 바로 공정(fairness)이다. 사실 공정이란 개념은 입장에 따라 그 의미가 천차만별이다. 일반적으로 ‘공평(equality)’과 비슷한 뜻으로 쓰이지만, 어떤 이들은 ‘능력에 따른 보상’을 공정이라 부른다.
공리주의자들은 절대 다수의 행복을 공정하다고 주장하며, 경쟁사회를 선호한다면 동등한 룰을 적용해 성과에 따른 차별이 주어지는 것을 지향한다. 그런데 그 뜻이 무엇이건 간에 공정은 편애와는 대치할 수밖에 없다. 출발선에서건 도착점에서건 편애가 개입하면, 그 게임은 편애의 혜택을 보지 못한 이들에겐 어쨌든 불공정할 테니까.
이런 위험 소지가 있음에도 저자가 편애를 편드는 이유는 명확하다. 현대사회가 공정에 집착하다가 중요한 것을 잃고 있다고 본다. 저자의 아들이 초등학교 1학년일 때 경주대회에 나가서 우승 리본을 받아왔다. 흐뭇해진 그는 아이의 1등을 마구 치켜세웠는데 아이는 오히려 짜증을 내더란다. 왜냐면 반 전체가 모두 ‘우승’했기 때문이다. 학교는 등수를 매기지 않고 참가자 전원에게 리본을 줬다. 하지만 그게 과연 공정한 걸까. 뭔가를 잘한 아이를 더 칭찬해주는 게 정녕 편애일까.
저자는 오히려 현대 서구사회는 고대 동양이 지닌 ‘편애의 미덕’을 배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타인보다 가족을 우선시하는 것은 당연한 본능이다. 신뢰를 쌓은 벗에게 더 베풀려는 마음도 나쁘게 볼 게 아니다. 편애가 넘치면 문제가 발생하지만, 경직된 공정 역시 과부하가 걸린다. 어느 한 쪽을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것은 이롭지 않다는 게 저자의 조언이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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