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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View]유희관 “강속구 투수 부럽지만…‘76km 커브’도 잘만 통하죠”

입력 | 2013-07-01 07:00:00

두산 유희관은 빠르게만 돌아가는 세상에서 ‘느림의 미학’을 보여주고 있다. 유희관이 6월말 광주 원정 숙소 호텔 커피숍에서 스포츠동아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스포츠동아DB


■ 스피드 시대, 느림의 미학 뽐내는 두산 유희관

현대화와 함께 우리 생활은 ‘스피드 업’이 대세다. 인터넷, 휴대전화 모두 빨라야만 경쟁력을 인정받는다. 한국인들의 스피드 선호는 생활에서도 잘 나타난다. 택배, 음식배달, 대리운전, 기자들의 기사 전송, 심지어 대형 마트 계산도 빠른 것을 선호한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은 나라에서는 현지인들이 ‘빨리 빨리’라는 말을 알 정도다. 야구도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투구구속에 대해서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스피드를 중시한다. 용병 또는 신인 우선지명 시 시속 145km 이상을 던지지 못하는 투수는 관심 밖이다. 이와 같이 ‘스피드 우선’ 시대에 흐름을 역행하는 사나이가 나타났다. 두산의 좌완투수 유희관(27)이 그 주인공이다. 유희관은 ‘스피드업’이 대세인 현실에서 ‘느림’을 추구하며 개성을 뽐내고 있다. 2009년 중앙대를 졸업한 뒤 두산에 입단한 그는 지난해까지 1군에서 21경기에 구원등판했지만 단 1승도 올리지 못했다. 올 시즌에도 불펜에서 출발했지만 프로 데뷔 후 처음 선발등판한 5월 4일 잠실 LG전에서 승리를 따낸 뒤 6월 30일까지 3승1패 3홀드 1세이브, 방어율 2.76의 호성적을 올리며 두산 마운드의 한 축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상무 시절 타자 타이밍 뺏으려 던진 공
마구? 사회인야구 커브? 힘은 안 들죠

불펜서 첫 선발 변신…상무서 경험 도움
3경기 무승…표정관리 안 되는 건 사실

정명원 코치 ‘에이스’ 대접…고마울 따름


-비록 승수 추가가 늦어지고 있지만 연일 호투다. 본인도 이렇게 잘 던질 줄 알았나.

“전혀 생각 못했다. 그냥 매 순간 열심히 던지는 것뿐이다. 포수들이 전력분석을 많이 하니 타자들의 습성을 잘 안다. 그래서 포수 사인대로 던지는 편이다. 포수들의 도움과 감독, 코치님들의 조언이 큰 도움이 된다.”

-최근 3경기 째 호투하고도 승리가 없다. 선배인 김선우는 그래도 승리를 챙겨야 스트레스가 풀린다고 하던데.

“승리가 되지 않는 것에 대해 스트레스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내가 승리투수가 되고 팀도 이긴다면 좋지만 지금은 내 승리보다 팀 승리가 우선돼야 할 시기다.”

-솔직히 말해보자. 블론세이브가 되면 덕아웃에서 기분이 어떤가?

“표정관리가 안된다. 댓글을 보니 ‘건드리면 울 것 같다’고 하던데 사실이다. 하하. 승리가 날아가는 순간에는 나도 사람인지라 감정조절이 힘들다. 그러나 덕아웃에는 나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불펜투수들의 마음도 가뜩이나 미안할 텐데 내가 티를 내면 더 불편하지 않겠는가. 다만, 정명원 코치님이 걱정은 하시더라. 호투하고 승리를 못 챙기는 일이 쌓이면 한 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면서 말이다. 그래서 다음 등판에 더 신경을 쓰고 생각을 많이 한다.”

-5월말부터 고정 선발이 됐다. 선발투수로 나가라는 통보를 받았을 때 어땠는가?

“마음가짐이 달라지더라. 러닝을 평소보다 많이 하면서 체력관리를 했고 연습 때 공도 많이 던지면서 선발등판을 준비했다.”

-말이야 쉽지만, 사실 불펜에서 뛰다 갑자기 선발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계속 중간계투만 했었다면 힘들었겠지만 대학 때나 상무에서 선발투수로 던진 것이 많이 도움이 됐다. 상무에서는 선발만 했었으니까.”

-선발투수로의 생활은 어떤가.

“아무래도 컨디션 조절하기가 좋다. 불펜투수는 매일 긴장하고 등판을 준비해야 하는데, 선발은 4일이라는 재충전 시간도 있다. 그 간격이 단점이 되기도 한다. 불펜은 그날 못 던지면 다음날 잘 던져서 만회가 되는데, 선발은 4일을 기다려야 한다. 다음 등판까지 기다리는 동안이 고달프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팀의 주축선발투수가 되면서 주변 반응이 달라졌을 것 같다.

“일단, 정명원 코치님은 잘하든 못하든 한결같으시다. 구단 직원 분들은 인사를 하면 ‘에이스 지나간다’라고 얘기해준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기자 분들? 하하. 예전에는 그냥 인사만 했는데, 지금은 질문 하나라도 더 해주신다. 고마울 따름이다.”

두산 유희관. 스포츠동아DB


-느린 볼이 화제다. 강속구 투수가 주목받는 시대여서 더 그런 모양이다.

“내 생각도 그렇다. 남들과 똑같은 구속으로 던졌으면 이슈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150km의 강속구로 상대 타자를 잡는 모습이 익숙한데, 70km짜리 공으로 타자를 잡아내니깐 팬들도 색다르게 보이는 모양이다.”

-강속구에 대한 열망은 누구보다 클 것 같다. 강속구 투수가 부럽지 않은가?

“항상 부러운 마음이다. ‘내가 저런 빠른 공을 던지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한다. 동료인 (홍)상삼이나, (김)강률이의 빠른 공을 보면 부럽다. 선배들은 강률이 스피드에 내 제구력이었다면 메이저리거가 돼 있을 거라고 한다. 하하. 하지만 내가 가진 실력과 능력 안에서 열심히 해서 이 자리에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개성시대 아닌가. 빠르게 던질 수 없다면 아예 느린 것도 나만의 특징을 살리는 데에는 좋은 것 같다.”

-시속 76km 커브가 여전히 화제다. KIA 신종길은 ‘마구’라고 이야기 하더라.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사회인야구 커브’라고 불리던데 알고 있는가?

“알고 있다. 대학, 상무 시절에 장난삼아 타자 타이밍을 뺏으려고 던진 공이 지금의 커브다. 7∼8년 동안 등판 때 1∼2번 씩 던지는데 제대로 맞은 적이 없다. 나로서는 힘 안들이고 타자를 잡을 수 있으니 좋다.”

-지금이야 느린 볼이 개성이지만, 프로에 오기 이전에는 스카우트들 눈에 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맞다. 스카우트들은 대부분 체격 좋고 볼 빠른 투수를 원하니까. 대학 때 나름 잘했다고 생각해서 드래프트 때 내심 기대를 했었는데, 결론적으로는 실망만 컸다. 스카우트들은 빠른 볼을 가진 고졸 유망주를 찾더라. 컨트롤은 프로에서 잡아가면 된다는 생각인 것 같다. 드래프트 되지 못하고 야구를 그만두는 친구들도 많은 와중에 2차 6번 지명도 감사한 일이지만, 사실 기대했던 순위는 아니었다. 나를 알아봐준 두산에 늘 감사하고 있다.”

-어릴 때 동경하던 선수는 누군가? 정교한 컨트롤로 알려진 매덕스? 글래빈?

“아니다. 랜디 존슨과 이상훈 선수였다. 어릴 때 뒷머리를 휘날리며 마운드로 달려 나가던 이상훈 선수의 모습이 그렇게 멋있을 수 없었다. LG 선수 좋아했다고 (두산)팬들이 뭐라고 하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어릴 때 이야기이니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

-호투가 이어지고 있음에도 여전히 ‘느린 볼 투수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다.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평가에 대해서는 나도 잘 알고 있다. 나는 3∼4시즌을 꾸준히 던진 투수가 아니다. 아직은 보여준 것이 없다. 상대가 나를 분석하는 몇 배 이상으로 연구해서 반짝 활약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물론, 무너질 때도 있고 슬럼프도 있을 것이다. 그 슬럼프를 빨리 극복하는 투수가 돼야 한다. 꾸준히 잘 던져서 그 편견이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팬들의 사인 공세도 부쩍 늘었다고 들었다.

“그렇다. 근데, 왜 선물은 안 늘지? 하하. 농담이다. 알아봐 주시는 팬이 많아졌다. 팬들의 사인이나 사진 요청은 거의 다 응하는 편이다. 사실, 팬들도 사인 요청을 하기 위해 용기내서 오는 것 아닌가. 특히 어린이들은 사인을 안 해주고 외면하면 평생 상처로 남는다. 하지만 내가 친절하게 사인을 해준다면 그 어린이는 클 때까지 그 기억을 잊지 않고 두산 팬으로 남을 것이다. 그 어린이가 훗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를 안고 야구장에 올 것이 아닌가.”

-훌륭한 생각이다. 훨씬 더 성공한 선수가 돼서도 변하지 않을 것인가?

“물론이다. 자리가 사람을 변하게 한다고 하지만, 야구를 잘하면서 변했다는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다. 야구장이나, 야구장 밖에서도 항상 밝고 열심히 하는 선수, 한결같은 선수로 기억에 남고 싶다.

정지욱 기자 stop@donga.com 트위터 @stopwook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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