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목 교수, 미암 유희춘의 일기에 숨은 사연 밝혀
미암 유희춘이 쓴 ‘미암일기’ 원본(보물 제260호)과 그의 문집 ‘미암집’ 목판. 문화재청 홈페이지
미암 유희춘이 자신의 셋째와 넷째 얼녀를 양인으로 해방시키는 과정에서 작성한 방매(放賣) 문서의 초안. 실제 방매 문서를 작성하기에 앞서 일기에 연습용으로 쓴 것이다. 전경목 교수 제공
전 교수는 이런 내용을 밝혀내기 위해 ‘모자이크 기법’과 ‘숨은 그림 찾기 기법’이라는 새로운 고문헌 연구방법론을 시도했다. 얼녀의 속량(贖良·몸값을 받고 노비를 양인 신분으로 풀어주는 일)과 관련해 미암일기 원본과 미암일기초 곳곳에 흩어져 있는 사실들을 모자이크처럼 꼼꼼히 맞춰 나간 뒤 그 이면에 숨겨진 사연을 숨은 그림 찾듯 밝히는 방식이다.
둘째 딸 해복도 말을 주고 속량시키려 했으나 해복의 주인이던 은진현감 이구(李懼)는 다른 요구를 했다. 미암일기에는 “말을 받지 않고 대신 그(이구)의 사위 이정이 벼슬을 구할 때 내가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해 달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하지 못하겠다고 거절했다”고 쓰여 있다. 유희춘이 이 제안을 거절함으로써 해복의 속량은 1년 넘게 못 이뤄졌다. 그러다 해복의 혼담이 오가자 유희춘의 마음이 급해졌다. 그러던 어느 날 이구가 유희춘의 집으로 찾아와 해복의 속량을 허락했다. 미암일기에는 “은혜가 특별하여 무어라 감사의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쓰여 있을 뿐 속량 대가를 어떻게 지불할지에 대해선 언급이 없다.
전 교수는 “결국 이구의 요구가 관철된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유희춘의 셋째 딸 해명과 넷째 딸 해귀의 속량 과정을 통해 추론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중에 유희춘은 이구의 사위 이정이 벼슬을 구하는 것을 도와 해명과 해귀까지 다른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속량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해명과 해귀의 매매 문서는 유희춘의 이름이 아닌 유희춘의 셋째 사위 이름으로 작성됐다. 일종의 ‘명의신탁’이다.
미암일기 곳곳에는 유희춘이 인사권을 가진 관리들을 만날 때마다 이정을 적극 천거한 사실이 기록돼 있다. 이후 이정은 건원릉 참봉에 임명됐으나 상관에게 보고하지 않고 동료를 대신 근무하도록 한 일이 적발돼 곧 파직됐다.
신성미 기자 savor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