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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고죄 60년만에 폐지됐지만 시작일 뿐, 성범죄 예방-수사 전문가 제대로 키워야”

입력 | 2013-07-01 03:00:00

■ 여성가족부 좌담회




여성을 폭력으로부터 지키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 방안을 찾기 위한 좌담회가 지난달 24일 여성가족부 장관접견실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이미경 교수, 김정숙 회장, 조윤선 장관, 김형준 교수, 전수진 대표. 김재명 기자 base@donga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 조항이 60년 만에 폐지됐다. 이달 19일부터 성폭력 피해자가 고소하지 않더라도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다. 합의를 했더라도 마찬가지다. 음주, 약물로 인한 형량 감경도 대부분 배제된다. 이는 여성계의 숙원이었다.

성범죄자를 처벌하는 법이 없었던 건 아니다. 정부 역시 대책을 끊임없이 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폭력은 크게 줄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법 개정은 새로운 출발선일 뿐이지 그 자체로 해결책이 될 순 없다고 말한다.

피해를 막으려면 어떤 점을 보완해야 할까. 조윤선 여성가족부 장관이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했다. 여성주간(7월 1∼7일)에 앞서 지난달 24일 ‘여성이 안전하고 행복한 사회’를 주제로 여성부 장관접견실에서 열린 좌담회에서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 김정숙 한국여성단체협의회장, 이미경 이화여대 리더십개발원 특임교수, 전수진 시민모임 발자국 대표가 참석해 의견을 나눴다.

▽조 장관=여성에 대한 성폭력을 줄이고 인식을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 교수=친고죄 폐지 이후 발생할 문제를 촘촘하게 준비해야 한다. 피해자의 신원이나 비밀을 보장하면서 수사와 재판이 이뤄지도록 해야 한다. 성범죄 전문가를 양성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전 대표=결국은 운영하는 사람의 문제다. 성폭력 피해자 지원기관의 직원은 자주 바뀐다. 보수가 적고 재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이들은 피해자를 가장 먼저 만난다. 이들의 처우를 포함해 좀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이 교수=담당자의 전문성이 중요하다. 현재 전담 경찰과 검사, 판사는 길어야 2년여 근무한다. 성폭력 사안은 너무 다양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데, 이런 순환보직 제도 때문에 전문가를 양성하기가 어렵다.

▽김 회장=친고죄가 아니라서 타인이 고발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조사해야 했으니까 제대로 수사가 되지 않았다. 또한 ‘내가 내 마누라 맘대로 한다’거나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는 풍조를 더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이런 풍조 때문에 처벌도 약하고 기소도 안 됐다.

▽이 교수=2차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도 노력할 필요가 있다. 피의자에겐 미란다 원칙에 따라 권리를 알려주면서 피해자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갖는 권리와 재판 과정을 세세하게 알려주면 도움이 된다.

▽김 회장=예방 교육 역시 중요하다. 교과서에 관련 내용을 수록하거나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 공공기관, 일반 기업 가리지 않고 신입사원을 뽑을 때도 관련 교육이 필요하다.

▽김 교수=대학 역시 문제다. 신입생은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도록 돼 있는데 정말 시행되는지 실태조사를 하면 어떨까. 이행하지 않은 학교에 대해서는 불이익을 줘서라도 철저하게 지키도록 하자. 성폭력을 저지른 교수에 대한 처분이 솜방망이인 점도 문제다. 한 번 걸리면 끝까지 혐의를 추적하자. 상하관계를 악용해 죄를 지었다면 가중 처벌을 하는 등 신상필벌 원칙을 적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교수도 성폭력 예방교육을 받는지 모니터링하고, 제대로 안 됐을 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전 대표=정책 담당자나 경찰, 검사, 판사가 성폭력 피해자의 목소리를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 아무리 좋은 대책이 나와도 피해자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뉴스나 공소장을 보는 것과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피해자는 작은 부분에도 상처를 받는다.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내 일처럼 정책을 만들고 재판을 하지 않을까.

▽이 교수=성폭력 예방교육도 좀 더 내실을 다져야 한다. 교육시간을 10시간에서 15시간으로 늘리고, 횟수를 1회에서 3회로 늘리는 정책도 좋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수백 명을 모아놓고 성폭력 예방교육을 해서 실익이 있겠는가. 자신의 행동을 성찰하도록 유도하려면 소규모 토론식 교육이 필요하다.

정리=이샘물 기자 ev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