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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의 상처 치유’ 먼저 손내밀어

입력 | 2013-07-01 03:00:00

[朴대통령 방중 이후]朴대통령, 6·25때 전사한 중국군 유해 360구 송환 제의




6·25전쟁 때 전사한 중국군의 유해 360구가 묻혀 있는 경기 파주시 적성면 답곡리 적군묘지. 파주=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중국을 국빈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군 유해 송환을 중국 정부에 전격 제안함에 따라 군 당국이 유해의 송환 방식과 절차 등에 대한 구체적인 검토 작업에 즉각 착수했다.

군 고위 관계자는 30일 “중국이 유해 송환을 공식 요청할 경우 양국 외교안보 채널 간 실무협의를 거쳐 유해 송환 등에 대한 후속 절차가 본격 논의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박 대통령의 중국군 유해 송환 의사 표명이 중국의 상당히 민감한 부분을 건드린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2010년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6·25전쟁)은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규정했기 때문이다. 인도주의적 측면뿐 아니라 북-중 혈맹관계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중국 관영언론이 박 대통령의 제안을 거의 보도하지 않고 있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949년 중국 건국 이후 해외 참전 중 전사해 현지에 묻힌 중공군 유해는 대략 11만5217구 중 99% 이상인 11만4000구(추정)가 한반도에 묻혀 있다. 북한은 200여 곳에 중국군 기념지와 묘지를 조성했다고 한다. 1973년 김일성 주석의 지시로 평안남도 회창군 등 8곳에 ‘중국 인민지원군 열사묘’를 조성 관리하고 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도 회창군 열사묘에 묻혀 있다. 이 묘역엔 2009년 원자바오(溫家寶) 총리, 2010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자인 3남 정은을 데리고 참배했다.

통상 한국에서 발굴된 중국군의 유해 송환은 군사정전위원회를 거쳐 북한을 통해 중국에 전달되는 절차를 밟아 왔다. 1980년대부터 1997년까지 중국군 유해 43구도 이런 과정을 거쳐 육로를 통해 판문점을 거쳐 중국에 송환됐다.

하지만 북한은 1997년 이후 군정위나 판문점 대표부를 통한 협의를 계속 거부하고 있다. 따라서 이번 유해 송환은 한중 간 외교채널을 통해 직접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국방부는 중국군 유해 360구를 항공편으로 중국 정부에 곧바로 전달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 중이다.

아울러 경기 파주시의 적군(敵軍)묘지에 매장된 중국군 유해들의 수습 작업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맡게 된다. 2000년 창설된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은 지금까지 7300여 구의 국군 유해를 발굴하는 과정에서 북한군과 중국군 유해 1000여 구도 발굴해 경기 파주시의 적군묘지에 임시 매장해 왔다.

적군묘지는 ‘자기 측 지역에서 발견된 적군 유해에 대해 인도·인수에 대한 조치를 취한다’는 내용의 제네바협정 120조에 따라 1996년에 파주시 적석면 답곡리에 조성됐다. 총면적은 6099m²로 축구장의 약 2배 크기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북한군과 중공군을 비롯해 1968년 김신조와 함께 청와대를 기습하다 사살된 공비 30명 등 1100여 구의 유해가 매장돼 있다.

지난해까지 적군묘지의 외관은 상당히 초라했다. 작은 봉분 앞에 세워진 약 50cm 높이의 흰색 말뚝에 묘지 주인의 이름과 계급이 적혀 있는데 유해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 ‘무명인’이라고 적힌 묘역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해마다 중국인 관광객의 참배가 늘어나고 관리 문제가 공론화되자 국방부와 경기도는 지난해 8월부터 4개월간 5억 원을 들여 낡은 시설을 교체했다. 향로 제단과 대리석 묘비를 세우는 등 묘역 정비 작업도 벌였다. 국방부 관계자는 “지금도 중국군 유해가 계속 나오고 있는 만큼 이번에 유해 송환이 실현되면 앞으로 정례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베이징=이헌진 특파원 ysh100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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