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국빈 방문이 끝났다. 한중 관계가 역사적 전환점을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런데 핵심 의제인 북핵 문제에서는 뭔가 허전하다. ‘미래비전 공동성명’은 ‘어떤 상황에서도 북한의 핵 보유를 용인할 수 없음을 분명히 했다’고 강조했다. 다만 ‘용인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한’ 주체는 ‘한국’이다.
이번에 ‘양측’이 합의한 건 ‘한반도 비핵화 실현과 평화 안정 유지가 공동 이익에 부합함을 확인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가 한국에 대한 미국의 핵우산까지 모두 거론한 것인지 역시 모호하다.
우리가 신뢰를 말할 때 중국은 꼼꼼하고 이기적으로 국가이익을 계산하고 있을지 모른다. 북한이 핵무장에 나선 것도 어찌 보면 중국의 이런 태도 때문이다. 중국이 1992년 한국과 수교한 것은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 이후 국제사회의 압박이 가중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한 양자 적극외교 차원에서 추진됐다. 김일성 북한 주석은 1992년 4월 양상쿤(楊尙昆) 중국 국가주석이 평양을 방문했을 때 이런 낌새를 눈치채고 “수교를 2, 3년만 늦춰 달라”고 요청했다. 북-미, 북-일 수교와 속도를 맞춰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해 7월 묘향산 별장에서 김 주석을 만난 첸치천(錢其琛) 중국 외교부장은 한중 수교를 통보했다. 그러자 김 주석은 “우리는 자주노선을 걷겠다. 중국이 하는 일은 중국이, 우리가 하는 일은 우리가”라고 말했다. 북한은 1년 뒤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했다.
중국은 남북을 놓고 끊임없이 줄타기를 해왔다. 북핵을 수용할 수 없으면서도 북한을 내치지 않는 것은 혹여 중국을 버리고 미국과 붙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시 주석이 박 대통령에게 “자주적인 평화통일을 지지한다”고 말했지만 그게 한국 주도의 통일을 지지한다는 뜻으로 직역될 수는 없다. 그 대신 한국이 주도적으로 미국 변수를 처리하면 통일에 반대하지는 않겠다는 뜻에서 ‘자주적’이라는 표현을 쓴 것으로 들린다.
이교난심(易交難深)이라고 했다. 사귀기는 쉽지만 깊어지기는 어렵다는 뜻이다. 박 대통령의 ‘심신지려(心信之旅)’ 외교가 큰 성과를 거둔 게 사실이지만 문제는 지금부터다. 김 주석이 한중 수교 1년 전인 1991년 덩샤오핑(鄧小平)의 초청으로 방중해 환대를 받은 곳도 박 대통령이 묵은 댜오위타이(釣魚臺) 18호각이었다.
고기정 베이징 특파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