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동(1967∼)
어느날
한 자칭 맑스주의자가
새로운 조직 결성에 함께하지 않겠느냐고 찾아왔다
얘기 끝에 그가 물었다
그런데 송동지는 어느 대학 출신이오? 웃으며
나는 고졸이며, 소년원 출신에
노동자 출신이라고 이야기해주었다
순간 열정적이던 그의 두 눈동자 위로
싸늘하고 비릿한 막 하나가 쳐지는 것을 보았다
허둥대며 그가 말했다
조국해방전선에 함께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라고
미안하지만 난 그 영광과 함께하지 않았다
십수년이 지난 요즈음
다시 또 한 부류의 사람들이 자꾸
어느 조직에 가입되어 있느냐고 묻는다
나는 다시 숨김없이 대답한다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이 푸르른 나무에 물들어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가진 것 없는 이들의 무너진 담벼락
걷어차인 좌판과 목 잘린 구두,
아직 태어나지 못해 아메바처럼 기고 있는
비천한 모든 이들의 말 속에 소속되어 있다고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받고 있다고
경제적 자본만이 자본이 아니다. 흔히 출생계급에서 비롯되는, 학벌이나 인맥이나 취향도 자본이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그런 자본을 상징자본이라 불렀다. 시에 나오는 ‘자칭 맑스주의자’는 상징자본가인데, 제 자본인 학벌에 일말의 채무감은커녕 특권의식을 지녔다. 물론 그가, 슬프게도, 별쭝난 사람인 건 아니다. 대한민국은 뭘 하든 학벌이 있어야 대접받는 사회니까.(민중운동을 하든 통일운동을 하든!) 당신, 자기 안의 적을 먼저 이기시라. 당신은 소시민이 아니지 않은가. 약자를 위한 대의를 품고 그 고귀한 뜻을 펼치려는 사람들에게 우리, 지켜보는 사람들은 더 큰 도덕성을 요구한다.
고만고만한 자기 세계를 미시적으로 파고드는 시가 대세인 현금의 우리 시단에 혜성처럼 나타나 근육질의 헌걸찬, 그러면서도 산뜻한 시를 쓰는 송경동에게 기립박수를 보낸다!
황인숙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