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초대석]세계여성지도자회의 집행위원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

입력 | 2013-07-01 03:00:00

“여성이여, 사회탓-애탓-남자탓하며 카페서 노닥거리는 건 罪”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은 여전히 에너지가 넘쳤다. 그는 “여성운동의 흐름은 과거의 법 제도 평등을 거쳐 이제 경제적 평등, 여성의 경제적 자립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말했다. 성주그룹 제공

지난달 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샹그리라 호텔 그랜드볼룸.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72개국에서 모인 1000여 명의 여성은 명함을 주고받고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올해 23회째를 맞는 ‘세계여성지도자회의(Global Summit of Women·GSW)’였다. 개최지를 돌아가며 여성 기업가, 경제·여성·복지 관련 행정가, 시민운동가 등이 모이는 행사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참석자가 300여 명 수준에서 그쳤지만 매년 수가 늘고 있다.

올해는 특히 다틴 세리 로스마 말레이시아 총리 부인, 아티페테 야햐가 코소보 대통령, 니콜 브리크 프랑스 해외무역장관, 미국의 인드라 누이 펩시 최고경영자, 파티마 알발루시 바레인 사회개발장관 등 쟁쟁한 인물들이 참석했다. 역대 최대 규모였다. 이 행사는 남성들에 비해 인적 네트워크가 부족하다고 느낀 여성들이 사흘간 여러 분야에 대해 정보를 공유하는 자리다.

토론회장 바로 앞에 낯익은 사람이 서 있었다.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57)이었다. 그는 이번 행사의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신이 생산하는 MCM 가방을 개당 1만 원에 내놓았다. 1000개가 하루 만에 다 팔렸다. 1998년 이후 매년 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김 회장은 현재 GSW 집행위원을 맡고 있다. 2010년부터는 매년 10만 달러씩 기부도 하고 있다.

새누리당 공동 선대위원장을 맡아 대선을 치른 후 정치에 입문하거나 정권의 한 자리를 꿰찰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기업 경영에 매진하고 있다는 그와 마주 앉았다. TV에서 봤던 짧은 머리스타일과 강렬한 눈 화장은 여전했다.

먼저 그가 회의에서 발언한 “기업 내 여성 임원 비율을 30%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강제적인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말부터 대화를 시작했다. “신입생 절반이 여자인데 여자들은 사회 기여도 안 하고 동창회비도 안 낸다. 아예 뽑지를 말든지 아니면 확실히 대학에 기여할 사람만 뽑든지”(2009년 연세대 특강) “여자들도 군대를 보내 남자 부담을 줄여주어야”(2010년 전경련 포럼)처럼 평소 ‘불편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던 그였기에 ‘여성 특혜’를 주장하는 것이 좀 의외였기 때문이었다.

○ “쓸 만한 여자가 없다고? 일단 써봐라”

“2005년 여성 임원 비율을 전체 임원의 40%로 못 박은 노르웨이처럼 우리도 여성 임원 할당을 법으로 강제하거나 최소한 프랑스나 이스라엘처럼 상장사 기업 공개 시 반드시 여성 임원 비율을 공개토록 하자”는 그에게 ‘역차별 소리가 나오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고개를 흔들며 “남자들 중에는 여자를 임원으로 시키려 해도 시킬 사람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가만히 보면 그 말 뒤에 숨어 여자를 쓰지 않는 거다. 한번 써봐라. 써 보면 안다. 없을 것 같았던 인재들이 다 쏟아져 나온다”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여자들의 강점은 투명성과 원칙. “패거리 문화가 없고, 조직이 틀렸다고 생각했을 때 ‘노(NO)’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여자다. 술, 정치, 밀실, 패거리 문화가 우리 기업문화와 사회가 발전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요소들인데 여성들이 고위직으로 많이 갈수록 이런 부분들이 개선될 것이다.”

그에게 인상적이었던 글로벌 리더 고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에 대해서도 “남자보다 더 남자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위기에 강한 모성애, 한번 세운 원칙에 대해서는 어떤 이유로도 굽히지 않는 소신과 원칙, 투명성이야말로 여성들의 대표적인 리더십 특성을 보여 준다”고 했다.

여성 장관을 두 명밖에 배출하지 못한 박근혜 대통령의 첫 인사(人事)에 대해서는 “분명 다음 스텝(단계)을 갖고 있을 것이다. 여성 대통령이 나온 것만도 쇼킹한데, 장관들까지 여자들로 잔뜩 채운다? 처음부터 반발이 거셌을 것이다. 장관, 국장, 그 밑의 실무자들까지 서서히 여자들이 자리를 채울 것이다. 나는 낙관적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 여성 인력 활용에 국가 생존이 걸렸다

그의 직업은 기업인이다. 고용자 입장에서 기혼 여성 인력에 대한 솔직한 의견이 궁금해 ‘기업 입장에서 기혼 여성 고용은 비경제적인 선택 아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가족을 이끌어 보고 애를 키워 본 기혼 여성들에게는 남들이 못 가진 강점이 있다. 구성원들과 부닥치며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들을 조율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와중에 결단력과 판단력, 리더십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로 ‘결혼과 출산이 여자에게 손해’라는 인식을 갖고 있는 여직원들에게 적극적으로 결혼과 출산의 장점을 설파하고 다닌다고 한다. 그가 23세 때 딸아이를 키우면서 느꼈던 놀라운 체험도 함께 설명하면서 말이다.

김 회장은 “여성 인력 활용은 단순히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으려는 국가에는 사활이 걸려 있는 문제”라고 했다. 올해 GSW의 주제가 ‘신경제를 창조하는 여성(Women: Creating NEW Economies)’인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았다. 그는 이 대목에서 1999년 매킨지 보고서가 지적한 한국의 문제점을 언급했다.

“1960년대식 수출 육성 산업 시대에는 남성 인력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지식산업 기반의 사회에는 여성이 필수적이다. 한국은 여성 인력이 경제활동에서 빠져나가는 누수를 해결해야 국가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는 지적이었다. 여기에 자극받아 한국의 여성부가 생기는 데 큰 동력이 됐다.”

여성부 출범 당시 자문위원이기도 했던 그는 “이제 한국의 여성운동에도 제3의 물결이 와야 한다”고 말했다.

“일부 여성운동가들은 이념투쟁적인 여성운동에 사로잡혀 있다. 한국의 현대 여성 1세대는 조선시대, 일제강점기를 지나 전쟁을 겪은 어머니 세대다.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헌신해 오늘날의 한국을 만든 일등 공신들이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고 선언한 2세대 여성운동이 등장해 남성 중심문화를 개혁하고 제도를 뜯어고치는 데 집중했다. 1960∼1980년대 여성운동이 그랬다. 이제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세계 페미니즘의 주류도 남성을 적대적으로 보던 극단적인 페미니즘에서 벗어나 공존과 협력의 대상으로 보는 합리적인 페미니즘으로 향해 가고 있다.”

○ 독해지지 말고 강해져라

제도를 바꿔서라도 더 많은 여성들에게 임원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가, 왜 그렇게 여자들이 듣기에 불편한 소리를 많이 한 걸까.

“여자들도 스스로를 강하게 훈련시켜야 한다. 정보기술(IT) 덕분에 가사노동에 투입되는 시간도 많이 줄었다. 물론 아직도 힘든 것 안다. 그러나 왜 불평만 하고 있는가. 이전 세대들이 투쟁을 하면서 어렵사리 법과 제도를 만들어 놨다. 예전에는 돈이 없고 여자들 교육을 안 시켜서 못했는데, 지금도 사회 탓, 애 탓, 남자 탓 하면서 살 수만은 없지 않은가. 세상이 이렇게 글로벌하게 돌아가는데 아직도 카페에서 노닥거리는 것은 죄(罪)다.”

그는 회사에 취업하고 난 뒤 여성들의 부족한 점에 대해서도 말을 이어 나갔다.

“여자 직원과 남자 직원을 비교하는 말들을 들여다보면, 여자들은 한마디로 자기감정을 제대로 제어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지적이 많다. 여자들은 업무로 혼을 내면 그 의미를 곡해하는 것을 넘어 자기를 미워한다고 생각한다. 장기 비전에 대해 물어보면 스스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 회장은 “남자들은 묵묵하게 넘어가는 일도 여자들은 곧잘 흥분한다”며 “여자들 스스로 먼저 일을 찾아서 조직을 위해 도울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여성들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주장은 아직도 변하지 않았냐’고 묻자 이렇게 말했다.

“물론이다. 20, 30대 여성들이 너무 나약하다. 극기(克己)가 안 된다. 제발 약한 척 좀 하지 마라. 과거에는 제도가 여성들을 옭아맸다. 그런데 지금은 적이 자기들 안에 있다. 엄마 세대가 너무 약하게 키웠다. 힘들면 결혼해라, 포기해라 이런 식으로 말이다. 고생을 좀 사서 하게 해야 한다. 운동도 열심히 시켜서 체력도 키워 주어야 한다. 철저하게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게 하면서 말이다.” 귀한 딸일수록 더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소리로 들렸다.

○ “돈 주는 보육정책은 잘못됐다”

김 회장은 기혼 여성의 육아 부담을 어떻게 덜어줄 것인지가 중요한 문제라면서도 구체적인 정부 정책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을 피력했다. 대표적인 게 현 정부의 일괄적인 현금 지급식 육아정책. 현재 모든 0∼5세 영유아 부모들은 현금 또는 바우처 카드로 정부로부터 매달 지원금을 받고 있다.

“단순히 현금을 조금 쥐여 주고 말 것이 아니라, 부모들이 만족할 만한 그런 수준의 보육시설이 많이 생겨야 한다. 영유아 보육정책에도 경영 마인드가 도입되어야 한다. 프랜차이즈 형태의 시설 확장도 고려해볼 만하다. 교육과정이나 시스템도 외국에서 검증받은 좋은 것을 들여오고, 교재나 교구도 공동구매로 사는 식이다. 부모들에게 호평을 받는다면 10개, 20개씩 확장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행 영유아보육법은 기업이 어린이집 사업에 진출할 수는 있지만 비영리재단을 설립할 때만 가능하고, 수익사업이나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인터뷰 내내 그는 20∼40대 여자 후배들이 올라가야 할 머나먼 길에 대해 염려하고, 충고했다. 비록 달콤한 말은 해주지 않았지만 그의 채찍질이 아프지는 않았다. 그는 GSW가 열린 3일 동안 시간을 분초 단위로 쪼개 쓴 뒤, 시장조사를 위해 행사가 끝난 다음 날 태국 방콕으로 날아갔다.-쿠알라룸푸르에서

:: 김성주 성주그룹 회장 ::

대 성그룹 김수근 회장의 막내딸로 1979년 연세대 졸업. 이후 영국에서 공부한 후 블루밍백화점 등에서 사원으로 근무했다. 1990년 성주그룹을 세운 후 2005년에는 독일 가죽제품 브랜드인 MCM을 인수했다. 노무현 대통령 인수위 글로벌자문위원, 지난해 12월 대선에서 새누리당 공동 선대위원장을 맡았다. 박근혜 대통령을 “그레이스 언니”(‘惠’를 영어로 푼 것)라고 부르는 등 거침없는 태도로 언론의 주목을 끌었다.

인터뷰=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 [채널A 영상]박근혜를 ‘그레이스 언니’라 부르는 까닭
▶ [채널A 영상]황상민-김성주 ‘낯뜨거운 설전’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