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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희윤 기자의 싱글노트]18년만에 만난 넉넉한 네 모습, 무척 반가웠어

입력 | 2013-07-01 03:00:00

2013년 6월 30일 일요일 맑음. 열 여덟.
#64 이승열 ‘친구에게, 나에게’(2007년)




싱어송라이터 이승열. 그러고 보니 열여덟 살 때의 S와 좀 닮았다. 플럭서스뮤직 제공

지난 목요일, 대전 은행동이 아닌 서울 서교동에서 18년 만에 만난 대전 친구 S.

날렵했던 얼굴과 몸이 나이만큼 넉넉해진 너를 내가 먼저 알아보지 못해 미안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직장에 특채돼 사회인으로 숨 가쁜 10년을 보낸 넌 얼마 전 퇴사하고 다시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넌 아주 귀여운 아이의 아빠가 돼 있었다.

그때 우린 열여덟이었구나. 넌 참 말랐고, 작은 새처럼 밝은 목소리로 많은 이야기를 했었다. 이제 넉넉해진 몸집과 반대로 너의 언변은 정제되고 세련돼 있어 놀랐다. 그 무렵 성당 모임에서 ‘벙어리’로 오인됐을 정도로 과묵했던 나도 세상일을 하다 보니 말이 늘었다. 그런 나와 네가 겹쳐졌다. 무서운 세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게 어설펐던 우리 어린 날이 철없이 그리워졌다.

네게서 듣는 세상 이야기는 때로 달콤했고 자주 씁쓸했다. 세상은 착한 너를 가만 두지 않았다. 널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얼마 전 네 어머님이 돌아가신 게 계기가 됐다. 그동안 우리가 아는 누군가는 죽었고 누군가는 병들었다.

날 이렇게 찾아줘서 고맙다. 고기는 내가 샀어야 하는데…. 2차로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마시던 그 여름밤에 난 네 얼굴을 쳐다보고 또 쳐다봤다. 열여덟 그때의 네 모습이 변한 네 얼굴 속에서 걸어 나와 점점 내게 다가왔다. 넌 여전히 록 음악을 좋아한다고 했다. 대전에서 록 페스티벌이 열리니까 꼭 취재하러 오라고 했다.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네게 주려고 프랑스 전자음악 듀오 다프트 펑크의 음반을 사서 들고 갔는데 깜빡했다. 생각해보니 꼭 들려주고 싶었던 건 그게 아니다. 세상엔 사랑과 이별의 노래만 너무 많구나. 그건 우리의 노래가 아니다. 곧 다시 만나자. 그땐 내가 고기를 살게.

‘…여전한 네 모습이 무척 반가웠어… 희미하지만 아름다웠던 날들/저 밤하늘에/별이 되어서 우리에게 말하네/행복하라고… 미쳐 버릴 듯 빠르게도 지나온/시간들 속에/가슴 속 깊이 쌓여만 가던 나의/상처들이여…’(‘친구에게, 나에게’ 중)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