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30일 일요일 맑음. 열 여덟. #64 이승열 ‘친구에게, 나에게’(2007년)
싱어송라이터 이승열. 그러고 보니 열여덟 살 때의 S와 좀 닮았다. 플럭서스뮤직 제공
날렵했던 얼굴과 몸이 나이만큼 넉넉해진 너를 내가 먼저 알아보지 못해 미안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던 직장에 특채돼 사회인으로 숨 가쁜 10년을 보낸 넌 얼마 전 퇴사하고 다시 빈손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넌 아주 귀여운 아이의 아빠가 돼 있었다.
그때 우린 열여덟이었구나. 넌 참 말랐고, 작은 새처럼 밝은 목소리로 많은 이야기를 했었다. 이제 넉넉해진 몸집과 반대로 너의 언변은 정제되고 세련돼 있어 놀랐다. 그 무렵 성당 모임에서 ‘벙어리’로 오인됐을 정도로 과묵했던 나도 세상일을 하다 보니 말이 늘었다. 그런 나와 네가 겹쳐졌다. 무서운 세상이란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게 어설펐던 우리 어린 날이 철없이 그리워졌다.
날 이렇게 찾아줘서 고맙다. 고기는 내가 샀어야 하는데…. 2차로 편의점 앞에서 맥주를 마시던 그 여름밤에 난 네 얼굴을 쳐다보고 또 쳐다봤다. 열여덟 그때의 네 모습이 변한 네 얼굴 속에서 걸어 나와 점점 내게 다가왔다. 넌 여전히 록 음악을 좋아한다고 했다. 대전에서 록 페스티벌이 열리니까 꼭 취재하러 오라고 했다.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네게 주려고 프랑스 전자음악 듀오 다프트 펑크의 음반을 사서 들고 갔는데 깜빡했다. 생각해보니 꼭 들려주고 싶었던 건 그게 아니다. 세상엔 사랑과 이별의 노래만 너무 많구나. 그건 우리의 노래가 아니다. 곧 다시 만나자. 그땐 내가 고기를 살게.
‘…여전한 네 모습이 무척 반가웠어… 희미하지만 아름다웠던 날들/저 밤하늘에/별이 되어서 우리에게 말하네/행복하라고… 미쳐 버릴 듯 빠르게도 지나온/시간들 속에/가슴 속 깊이 쌓여만 가던 나의/상처들이여…’(‘친구에게, 나에게’ 중)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