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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공부]“대학? 학과? 이미 사주에 있습니다”

입력 | 2013-07-02 03:00:00

역학으로 진학 상담하는 ‘교육 점집’



▲최근 서울 강남 등지에선 사주와 역학을 활용해 진로, 진학상담을 해주는 이른바 ‘교육 점집’을 찾는 학부모가 늘고 있다. 사진은 한 역술인이 운영하는 서울 강남의 컨설팅업체에서 학부모가 상담을 받는 모습.


지난달 19일 오후 서울 강남구의 한 상가건물에 위치한 교육컨설팅업체. 학부모 김모 씨(여·43·서울 송파구)는 이 업체 대표인 A 씨(51)와 마주 앉았다. A 씨는 올해 고교 2학년인 김 씨의 딸 박모 양의 사주(태어난 연·월·일·시)를 컴퓨터 프로그램에 입력한 뒤 설명을 시작했다.

A 씨의 ‘컨설팅’을 요약하자면 박 양은 ‘관운(官運)’이 강하지만 ‘학운(學運)’이 약한 사주.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는 ‘역마살’ 기운이 강해 직업은 기자 PD 항공승무원 등이 적당하다고 했다. 고3이 되는 내년에는 ‘원진살’이 있어 담임교사나 친구 관계에서 문제를 겪을 수 있으니 주의가 필요하다는 것. 2015년 12월에 운이 좋으므로 대입 정시모집을 노리면 좋으며 ‘목(木)’ 기운이 강하므로 그에 맞는 ○○대. ○○대에 원서를 넣는 것이 좋다고 그는 말했다.

A 씨의 본업은 점술인. 그는 “학교 이름, 학교 위치, 논술·면접시험일, 합격 발표일 등이 모두 학생의 사주와 관계돼 있어 이를 따져보고 진학 설계를 해준다”면서 “수능을 볼 때 ‘찍기’를 할 때도 몇 번 선지를 찍는 것이 유리한지도 사주로 정해준다”고 했다.

최근 서울 강남 등지에선 점술이나 사주역학을 활용해 교육컨설팅을 하는 이른바 ‘교육 점집’을 찾는 학생과 학부모가 늘고 있다. 이 업체들은 대학에 원서를 낸 수험생이나 학부모에게 합격 여부를 점쳐주는 수준을 넘어 진로·직업 설정과 국제중·특목고 입시전략 수립, 해외 유학 컨설팅까지 해주며 성업 중이다.

역술인은 입시 상담가에게 ‘러브콜’… 학원강사도 역학 공부

역학을 이용한 교육컨설팅이 늘어나면서 입시 분야에 전문성을 지닌 서울 강남의 교육전문가들과 업무 제휴를 하려는 역술인도 늘어난다. 역술인이 ‘러브콜’을 보내는 대상은 주로 자신의 자녀를 소위 ‘스카이(SKY)’ 대학에 입학시킨 경험을 내세워 활동하는 ‘학부모 입시컨설턴트’들. 일부 업체는 진로진학상담사 자격증까지 갖춘 이 입시컨설턴트들을 컨설팅 사무실에 상주시키면서 학습·입시상담을 진행한다. 1회 상담비용은 적게는 3만 원에서 많게는 20만 원에 이른다.

학원·과외 사업을 주로 해오던 기존 사교육업체가 명리학 등 역학을 적용한 진로·진학상담 서비스를 더불어 하는 경우도 늘어난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 있는 한 교육업체의 경우 학생의 사주를 보면서 일명 ‘선천 적성’과 추천 직업, 좌우뇌 성향, 추천 도서, 맞춤형 현장체험학습 장소 등을 담은 A4용지 20장 분량의 포트폴리오를 10만 원에 제공하는 영업을 하고 있다.

‘정보왕’ 강남 학부모가 ‘운’을 주목?

역술을 활용한 교육컨설팅을 찾는 학부모가 느는 이유에 대해 교육전문가들은 “중고교 및 대학 입시에서 논술, 면접, 자기소개서 등 수치화하기 어려운 요소의 비중이 점차 커지다 보니 ‘입시정보’로 승부하려던 학부모들도 점차 ‘운’ 같은 요소에 기대려는 경향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교육컨설턴트인 이미애 샤론코치&멘토링연구소장은 “학부모를 대상으로 복잡한 대입 수시모집에 대해 진학상담을 하다 보면 ‘도저히 모르겠다. 용한 점집이나 한 군데 소개해달라’고 말하는 학부모도 더러 있다. 그것이 학부모들이 ‘교육 점집’을 찾는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중3, 고2 자매를 둔 학부모 정재희 씨(46·서울 송파구)는 “대학을 가는 것만으로 취업이 보장되지 않고 ‘평생직장’ 개념도 사라지다 보니 당장의 대학 입학을 넘어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녀의 앞길을 내다보고 싶어 하는 학부모가 많아졌다”면서 “역술을 믿지 않거나 종교적 이유 때문에 점집에 출입하기를 기피하는 학부모들도 교육컨설팅 업체로 간판을 바꿔 단 곳이라면 자녀의 사주를 가지고 가 자녀의 대학, 학과, 직업까지 답을 얻으려 한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강훈 기자 ygh8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