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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비 LPGA 메이저 3연승]엄마 배 속부터 모태골퍼… “가족은 나의 힘”

입력 | 2013-07-02 03:00:00

세리 뛰어넘은 세리키드, 골프의 살아있는 전설이 되다




‘새로운 골프여제’ 박인비(25·KB금융그룹)가 1일(한국 시간) 미국 뉴욕 주 사우샘프턴의 서보낵 골프장(파72)에서 열린 제68회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한 뒤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며 ‘메이저대회 3연승’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사우샘프턴=게티이미지

황제나 영웅은 어릴 적부터 남다른 게 있다. ‘황제’ 타이거 우즈(38·미국)는 세 살 때 이미 9홀에서 48타를 쳤고 다섯 살 때는 골프다이제스트에 등장했다. ‘차세대 황제’로 평가받는 로리 매킬로이(24·북아일랜드)는 두 살 때 드라이버로 40야드를 날렸다.

1일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US여자오픈 우승으로 메이저대회 3회 연속 우승과 함께 시즌 6승째를 올린 박인비(25·KB금융그룹)는 이들에 비해 시작은 미약했다. 박인비는 초등학교 4학년이던 열 살 때 본격적으로 골프채를 잡았다. TV에서 박세리(36·KDB금융그룹)가 ‘맨발 투혼’을 앞세워 US여자오픈 정상에 오른 걸 본 직후였다. 3개월간의 맹훈련 끝에 출전한 첫 대회에서 박인비는 126타를 쳤다. 박인비의 어머니 김성자 씨(50)는 “소질이 없는 줄 알았다”고 했다. 하지만 누가 알았을까. 이 소녀가 15년 뒤 LPGA 투어를 평정하는 세계적인 골퍼가 될 줄을….

○ 배 속에서부터 골프 친 ‘모태골퍼’

박인비가 골프 선수가 된 것은 부모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아버지 박건규 씨(52)는 한때 언더파를 칠 정도로 아마추어 고수였다. 어머니 김 씨 역시 골프의 매력에 푹 빠져 있었다. 김 씨는 “우리 부부가 정말 골프를 좋아했다. 인비를 임신하고 5개월쯤 됐을 때다. 너무 골프가 치고 싶어 출장 간다고 둘러대고 골프 치러 간 적이 있었다”고 말했다. 할아버지까지 3대가 종종 라운딩을 하곤 했는데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요즘도 박인비가 귀국할 때는 가족 라운딩이 열리곤 한다.

본격적으로 골프에 뛰어든 박인비의 실력은 일취월장했다. 1년 만에 박인비는 최고 유망주가 돼 있었다. 나가는 대회마다 우승컵을 갖고 돌아왔다. 김 씨는 “당시 학부모들 사이에서 ‘인비가 나오면 출전하나마나 똑같다’는 말이 돌 정도였다”고 했다. ‘될성부른 떡잎’이었던 박인비가 중학생이 되자 부모는 딸을 미국으로 골프 유학을 보냈다.

○ 박인비를 일으킨 사랑의 힘

성공적인 아마시절을 보낸 뒤 2007년 LPGA 투어 무대에 데뷔한 박인비는 2008년 US여자오픈에서 덜컥 우승했다. 19세의 나이에 이뤄낸 대회 최연소 우승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우승이 독이 됐다. 갑자기 매스컴의 주목을 받게 되고 성적에 대한 강박관념이 생기면서 스스로 무너진 것이다.

지금은 상상하기도 힘들지만 당시 박인비의 샷은 들쭉날쭉했고, 드라이버 샷은 페어웨이를 벗어나기 일쑤였다. 박인비는 자신감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골프를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그때다.

당시 그의 손을 잡아준 것은 약혼자인 남기협 씨(32)였다.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프로 출신으로 미국 전지훈련 중 만난 남 씨는 힘든 상황에 빠져 있던 박인비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됐다. 박인비는 “오빠가 내 스윙을 정말 잘 본다. 그리고 항상 경쟁에 지쳐 있는 투어 생활에서 누군가 항상 내 편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박인비는 또 분위기 전환을 위해 2010년부터 뛴 일본 투어에서 4승을 거두며 자신감을 회복했다.

약혼자 남 씨와 항상 함께하는 박인비는 다른 선수들의 부러움을 독차지하고 있다. 1일 US여자오픈에서 박인비에 4타 뒤진 2위를 차지한 김인경(25·하나금융그룹)은 “인비는 요즘 골프 안팎으로 행복해 보인다. 항상 가족, 친구와 함께하면서 여유를 갖는 게 좋은 플레이로 연결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인비는 “작년부터 내가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면 부모님이 결혼을 허락하시겠다고 했는데 이미 결혼 허락은 받은 것 같다. 결혼은 때가 되면 할 것이다. 급할 것 없다”고 했다.

○ 화려하진 않지만 꾸준한 골퍼

박인비의 플레이는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다. 비거리가 많이 나는 것도 아니고 스윙 폼이 교과서적인 것도 아니다. 스스로도 “샷을 할 때건 퍼팅을 할 때건 몸에 배어있는 감(感)으로 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래도 박인비는 누구보다 안정적이고 꾸준하다. 코스에서도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단순하게 공을 친다. 아버지 박 씨도 이런 성격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는다. 스릭슨 클럽 등 장비를 후원하는 던롭스포츠코리아 관계자는 “클럽과 공에 관해서도 박인비 선수는 상당히 쿨(cool)하다. 한 번 세팅을 한 뒤에는 큰 불만 없이 사용하는 편”이라고 했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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