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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찬식 칼럼]소설 ‘탁류’가 되살리는 군산

입력 | 2013-07-03 03:00:00

복원된 채만식 소설의 무대… 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한 것은 뛰어난 문학의 힘
근대문화유산 보존 노력, 지역 활성화에 기여할 것
식민지 잔재라는 시각보다 역사 교훈 얻는 현장 삼아야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요즘 지방자치단체에 새로운 흐름이 한 가지 나타나고 있다. 20세기 이후 만들어진 근대문화유산을 발굴하고 활용하려는 움직임이다. 서울시는 경교장 이화장 등 건국 관련 유적을 비롯해 저명 문인과 예술인의 창작 공간, 구로공단 등 산업화 관련 옛 시설을 보존하기로 했다. ‘서울 속 미래유산’ 사업이다.

근대문화유산을 많이 갖고 있는 인천시도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인다. 인천 중구가 지난해 4월 인천 차이나타운에 개관한 짜장면박물관은 중국 음식점 ‘공화춘’의 옛 건물에 자리 잡았다. 1908년 영업을 시작한 공화춘은 국내 짜장면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주말이면 하루 1000명 정도의 관람객이 찾아오는 이 박물관은 지역 활성화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대구시는 옛 풍경을 간직한 골목길을 관광 자원으로 앞세우고 있다. 낡고 한적했던 골목길이 ‘근대 골목길’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해 인기를 모은다.

이 도시들 못지않게 근대문화유산을 많이 보존하고 있는 곳이 군산이다. 1899년 개항한 군산에는 일찍이 조계지(외국인 거주지역)가 설치되면서 근대 문물이 빠르게 유입됐다. 일제강점기에는 인근 호남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일본으로 실어 나르는 항구로 사용됐다. 그런 만큼 은행 세관 등 옛 건물과 역사 유적이 많이 남아 있다.

지난주 군산에서는 의미 있는 행사가 열렸다. 군산의 근대문화유산은 군산 내항 쪽에 집중되어 있다. 1908년 세워진 군산세관 건물에서 시작해 일본 제18은행(1907년 준공), 조선은행 군산지점(1922년 준공) 등 오래된 건축물들이 같은 도로를 따라 나란히 서 있다. 군산시가 2011년 설립한 근대역사박물관도 이곳에 있다. 근대문화유산 벨트를 이루고 있는 셈이다. 군산시는 이 건물들 내부를 미술관 공연장 문학카페 등으로 개조한 뒤 개관식을 가졌다.

개관에 맞춰 군산에 다녀왔다. 현장을 꼭 가보고 싶었던 것은 근대문화유산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활용하겠다는 발상이 신선했기 때문이었다. 소설가 채만식(1902∼1950)의 대표작 ‘탁류’와 이 일대가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도 있었다.

소설 ‘탁류’는 군산을 무대로 한 작품이다. 소설은 1930년대 군산 미두장(米豆場) 앞 큰길에서 중늙은이 정주사가 젊은 애송이에게 멱살을 잡힌 채 호되게 봉변을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미두장은 쌀을 선물 거래하던 곳으로, 군산이라는 도시의 심장에 해당한다고 작품 속에 묘사되어 있다. 그 시절 미두장 주변에는 여러 은행과 중매점이 들어서 있었다. 미두장에서 연이은 실패로 극도의 궁핍에 시달리던 정주사는 밑천도 없이 거래에 나섰다가 쌀 가격이 급락하자 그만 지독한 창피를 당한 것이다.

1930년대는 전통 사회와 윤리가 무너지고 새로운 경제 질서가 자리 잡던 시절이었다. 북적이는 항구도시 군산에는 돈과 일자리를 찾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논밭을 정리하고 군산으로 이주해온 정주사는 식민지 시대 조선인의 전형이었다. 채만식은 군산이 그 시절 시대상을 잘 보여주는 장소라고 여기고 ‘탁류’를 쓴 듯하다.

정주사가 봉변을 당하던 미두장은 사라지고 없지만 옛 은행들은 과거 모습으로 복원되어 있었다. 정주사가 한숨을 내쉬던 째보선창과 그가 살던 콩나물고개, 정주사의 딸 초봉이 근무했던 제중당 약국, 초봉을 연모하는 의사 지망생 승재가 일하던 금호병원 등 소설 속 장소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군산시가 복원에 나서기 전 조선은행 건물은 나이트클럽과 노래방으로 사용되다가 화재가 난 뒤 흉물로 장기간 방치되어 있었다. 일본 제18은행 건물은 중고품 교환판매점으로 쓰였다고 한다. 장기간 침체에 빠져 있던 이 일대를 되살린 것은 채만식과 그의 소설 ‘탁류’였다. ‘탁류’의 무대라는 점에 착안해 군산시가 문화예술 공간으로 조성한 것이다. 뛰어난 문학 작품이 가진 힘을 느낄 수 있다.

한때 근대문화유산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다. 국도극장과 스카라극장, 최남선 현진건의 고택 등 보존 가치가 높았던 근대 건축물들이 소리 소문도 없이 철거돼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소유주들이 문화재청에 근대문화유산으로 등록될 경우 재산권이 제한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근대문화유산의 보존을 어렵게 하는 요인은 식민지 시대의 잔재로 보는 시각이다. 그러나 서구 열강들에 나라를 내줬던 중국만 하더라도 식민지 잔재라고 해서 없애는 일은 하지 않는다. 잘 보존되어 있는 상하이와 칭다오의 옛 건축물들이 대표적인 예다.

군산의 근대문화유산들은 소설 ‘탁류’가 잘 묘사하고 있는 것처럼 일제강점기 한국에 대한 수탈과 억압을 상징하고 있다. 서대문형무소를 보며 우리가 극일(克日) 의지를 새롭게 하듯이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중요한 현장이다. 앞으로 근대문화유산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여유가 생길 때 우리의 국격도 한 단계 올라선다고 믿는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