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문명 기자가 쓰는 ‘김지하와 그의 시대’]<61>체포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배 중에 강원도에서. 김지하 제공
예로부터 나라의 역적을 목을 베 죽인 곳이고 1866년 병인박해 때에는 천주교도들이 처형된 순교지다. 김대건 신부의 목이 버려진 곳도 이곳이다. 상하이에서 돌아온 김옥균의 시체가 부관참시 능지처참당한 모래밭도 절두산 아래 강변이다. 지금은 성당과 기념관이 있지만 1970년대 초에는 아무것도, 아무 표지도 없었다.
1974년 2월 바람이 몹시 불던 어느 날, 김지하는 문화 운동을 하던 후배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 그리고 모래밭에 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그는 친동생들이나 다름없이 가까이 지내던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1월 긴급조치 1호가 발동된 이후 거의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도피생활을 하고 있었다. 밤이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불면의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어느 날엔가는 내내 꿈속에서 아내의 울음소리로 시달리기도 했다. 아내와 몰래 만난 날엔, “잘 참아 달라, 좋은 날이 올 것이다”라고만 말하고 이내 헤어졌다.
그러던 와중에 4월 긴급조치 4호가 발동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미개발지역으로 벌판이었던 모래내에서 살며 영화판에서 일하고 있던 친구 집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거리에서 구멍가게 문짝에 나붙은 이철 유인태 등의 현상 수배 포스터를 보기도 했다. 이때 지은 ‘모래내’라는 제목의 시에는 막막하고 불안했던 그의 내면이 잘 드러나 있다. 아기울음 소리 환청으로 내내 잠을 못 이루던 어느 날 새벽에 쓴 것이라고 한다.
목숨
이리 긴 것을
가도 가도 끝없는 것을 내 몰라
흘러 흘러서
예까지 왔나 에헤라
철길에 누워
철길에 누워
막막한 귓속으로 애 울음소리 가득차 흘러 내 애기
핏 속으로 넋 속으로 눈물 속으로 퍼지다가
문득 가위소리에 놀라
몸을 떠는 모래내
철길에 누워
한번은 끊어버리랴
이리 긴 목숨 끊어 에헤라 기어이 끊어
어허 내 못한다 모래내
차디찬 하늘
흘러와 다시는 내 못 가누나 어허
내 못 돌아가 에헤라
별빛 서린 교외선
철길에 누워
철길에 누워
김지하는 김수환 추기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서울교구청을 조심조심 찾아가 추기경을 만났다. “만약 무슨 일이 터지면 아내를 잘 돌봐 주십시오”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다. 추기경은 부탁을 받아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모래내로 다시 돌아왔다.
긴급조치 4호 선포 며칠 뒤인 4월 19일 맏아들이 태어났지만 김지하는 이 소식을 뒤늦게 감옥에서 듣는다.
김지하는 아예 지방으로 몸을 숨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마침 고 이만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청녀(靑女)’ 야외 촬영을 홍도에서 한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따라나선다. 홍도에서 촬영을 끝내고 이튿날 목포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여관방에 묵었다.
김지하는 1974년 4월 25일 체포된다. 그는 경찰관을 따라 배에 올라탔다. 목포에 도착하는 내내 선장실 쇠창살에 손을 묶은 수갑을 걸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버지 어머니 얼굴도 지나갔고 아내 얼굴도 지나갔다. 내가 혹시 잘못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영웅주의는 아닌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가…. 끊임없이 터져 나오는 기침과 함께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뒤엉켰다. 그는 고향 목포에 수갑을 차고 내렸다.
권총을 차고 호송하는 두 경관과 함께 서울 가는 고속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 신문을 보았다. 수십 명의 민청학련 지도부와 인혁당 관계자들 얼굴이 계보에 그려져 나와 있었다. 조영래의 얼굴도 눈에 띄었다. 만사가 모두 끝났구나, 허탈함이 밀려왔다.
김지하는 남산에 있는 그 무시무시하다는 ‘중앙정보부 지하 제6국’으로 들어갔다.
그는 훗날(1975년 2월) 동아일보에 ‘苦行(고행)…1974’라는 제목으로 세 편의 글을 싣는데 여기서 제6국에서의 체험을 이렇게 쓰고 있다.
‘저 기이한 빛깔의 방들, 악몽에서 막 깨어나 눈부신 흰 벽을 바라봤을 때의 그 기이한 느낌을 언제나 느끼고 있도록 만드는 저 음산하고 무뚝뚝한 빛깔의 방들. 그 어떤 감미로운 추억도 빛 밝은 희망도 불가능하게 만드는 그 무서운 빛깔의 방들. 아득한 옛날 잔혹한 고문에 의해 입을 벌리고 죽은, 메마른 시체가 그대로 벽에 걸린 채 수백 년을 부패해 가고 있는 듯한 환각을 일으켜주는 그 소름 끼치는 빛깔의 방들. 낮인지 밤인지를 분간할 수 없는, 언제나 흐린 전등이 켜져 있는, 똑같은 크기로 된, 아무 장식도 없는 그 네모난 방들. 그 방들 속에 갇힌 채 우리는 열흘, 보름 그리고 한 달 동안을 내내 매 순간순간마다 끝없이 몸부림치며 생사를 결단하고 있었다.’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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