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커집단 어나니머스 일원이 꿈… 인터넷서 해킹-악성코드 유포 배워블로그로 프로그램 팔다가 붙잡혀
인천의 한 중학교 3학년생 배모 군(14)은 공부보다는 컴퓨터가 더 좋았다. 11세 때부터 컴퓨터를 끼고 산 그는 학교 성적이 바닥권이었지만 컴퓨터와 관련된 것이라면 게임, 프로그램 제작 등을 가리지 않았다. 배 군의 장래희망은 국제 해커집단인 ‘어나니머스’의 일원이 되는 것이었다.
컴퓨터에 푹 빠져 있던 배 군에게 멘토 같은 존재가 있었다. 3년 전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우연히 알게 된 한국계 캐나다인 허모 씨(48)였다. 두 사람의 나이 차는 상당했지만 해킹,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 등이 공통의 관심사여서 금방 친해졌다. 허 씨는 배 군에게 “공부 못하면 아저씨하고 같이 서버나 관리하면서 용돈이나 벌자”고 농을 던지기도 했다. 그는 중국의 웹하드인 화중제국(華中帝國)을 배 군에게 소개해 줬다. 장래희망이 해커였던 배 군에겐 각종 해킹 자료, 디도스 유발 악성코드가 넘쳐나는 화중제국은 성지(聖地)나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9월 배 군은 자신의 실력도 시험해보고 용돈도 벌 겸 디도스 공격을 대행해 줬다. 불법 성매매 알선 사이트로부터 15만 원을 줄 테니 라이벌 알선 사이트를 공격해 달라는 부탁을 받은 것. 그는 음란 동영상, 최신 영화 파일, 악성 프로그램을 결합한 파일을 웹하드에 유포한 후 이를 내려받아 감염된 600여 대의 좀비 PC를 이용해 라이벌 사이트를 공격했다. 공격 성공 후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고 싶어 라이벌 사이트에서 띄워놓은 네이트 메신저를 이용해 사이트 운영자를 조롱하는 메시지까지 보냈다.
하지만 경찰이 악성 프로그램 판매 사이트를 본격 수사하면서 배 군은 4월 검거됐다. 경찰은 배 군을 나쁜 길로 유인한 허 씨도 6월에 검거해 정보통신망 침해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배 군이 검거된 장소는 다름 아닌 자신의 집. 경찰에 검거되는 아들을 코앞에서 지켜본 배 군의 어머니는 “자식을 잘못 키웠다”며 눈물을 흘렸다. 수사 과정 초기 배 군은 담당 형사 앞에서 “나는 화중제국 출신이다”라며 철없는 말을 계속 되뇌었다. 하지만 경찰의 계도가 계속되자 배 군은 “해커를 그만두고 학업에 열중해 사이버수사팀 형사 아저씨처럼 되고 싶다”며 마음을 바꿨다. 배 군은 미성년자임이 감안돼 불구속 처리된 후 현재 학교를 다니고 있다.
백연상 기자 bae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