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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김수연]먹거리 단속에 몰린 강력계 형사들… 조폭-살인범은 누가 잡나

입력 | 2013-07-05 03:00:00


김수연 사회부 기자

‘살인범 잡으러 돌아다니던 강력 형사들이 맛집 투어 하다 파김치 된다.’

올봄 강력계 형사들 사이에서 떠돌던 우스갯소리다. 걱정스러운 농담이 현실이 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불량식품을 포함한 4대 사회악(불량식품, 성폭력, 가정폭력, 학교폭력) 척결을 핵심 과제로 내세우자 일선 경찰이 경쟁적으로 불량식품 단속에 뛰어들고 있다. 불량식품이 줄어드는 것은 반갑지만 적잖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최근 일선 경찰서들은 불량식품 단속 실적을 경쟁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정부 방침에 따라 4대 사회악 수사 성과는 특별승진 점수에 반영되는데 그중에서 불량식품이 가장 만만하다는 게 일선 경찰의 전언이다. 성폭행 사건은 피해자 보호 문제로 언론 공개가 힘들고, 학교폭력이나 가정폭력은 주목도가 높은 대형 사건이 없는 탓이다. 실제 최근 경찰의 4대 악 관련 수사 발표는 대부분 불량식품 단속이었다고 해도 과하지 않다.

남들보다 한발 앞서 실적을 홍보하려는 경쟁도 뜨겁다. 2일 ‘불량 맛가루’ 수사 결과 발표 자리에서 기자들이 발표 내용의 미흡한 부분을 지적하자 경찰 관계자는 “다른 경찰서에서도 비슷한 사건을 수사한다는 말을 듣고 어차피 알려질 거라면 우리가 지금 발표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경찰은 정부에서 핵심 과제로 지목하는 부분에 수사력을 집중했다. 2012년 초 학교폭력 피해 학생들이 연달아 목숨을 끊자 경찰력을 대거 투입했고 일선 경찰서들은 앞다퉈 학교폭력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직폭력배에게나 붙일 법한 조직명으로 포장해 자극적인 보도자료를 낸 경찰서도 있었다. 주정뱅이 단속을 위해 경찰서마다 ‘주폭전담팀’을 꾸리기도 했다. 하지만 정부의 핵심 과제가 바뀌면서 이런 수사 성과는 이제 구경하기 힘들어졌다.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못된 식품업체를 강력히 단속하는 자체는 격려받아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경찰은 단속 성과만 자랑할 뿐, 국민이 불량식품을 피할 수 있는 정보는 제공하지 않고 있다.

경찰 인력이 한정된 상황에서 한쪽에 대규모 인력이 투입되면 그만큼 치안의 다른 어딘가에는 구멍이 뚫릴 우려가 있다. 맛가루 수사를 담당한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강폭계는 살인이나 성범죄를 수사하는 전문 부서다. 이들이 국민건강을 위협하는 불량식품 업자를 적발한 것은 훌륭한 성과다. 하지만 경찰 지휘부가 대통령이 설정한 우선순위에 너무 매달릴 경우 일선 경찰들이 살인이나 성범죄 등 본연의 수사 업무에 소홀해지는 일이 생길까 봐 걱정된다.

김수연 사회부 기자 s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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