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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담장소 4차례 핑퐁 끝에… 北 7·4성명 날 대화 손잡아

입력 | 2013-07-05 03:00:00

■ 남북 당국회담 무산 20여일만에 6일 판문점 통일각서 개성공단 회담




실무회담의 장소 문제로 치열한 샅바싸움을 벌이던 남북이 결국 판문점에서 6일 만나기로 합의했다.

정부는 그동안 개성공단 입주기업과 북한 당국 사이에 ‘낀 신세’였다. 입주기업들은 “개성공단 가동 중단 3개월째다. 장마철이 오기 전에 신속히 대책을 마련하라”고 정부를 압박했다. 북한은 이를 활용하듯 3일 ‘입주기업 관계자의 방북을 허용하겠다’며 한국 정부를 배제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그러나 정부는 실무회담의 장소 문제에서부터 북한 의도에 끌려가지 않았다. 정부는 4일 ‘판문점(남)→개성공단(북)→판문점 또는 경의선 남측 출입사무소(남)→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북)’으로 4차례의 제의 역제의 수정제의를 거듭한 끝에 장소 문제를 매듭지었다. 정부 핵심당국자는 “북한이 일방적으로 우리 인력의 출입을 차단한 개성공단에서 정상화 문제를 논의할 수 없어 중립적인 지역을 회담 장소로 원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남북 대화의 수준과 시기, 장소를 결정하는 것도 국제적 관례를 따르면서 정상화해야 한다는 태도를 보였다. 이번 회담 성사는 북한이 그런 남한의 대북원칙을 사실상 받아들인 모양새가 됐다. 이런 변화가 회담 결과에도 어떤 변화를 줄지 주목된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이날 “기싸움을 하거나 북한에 모멸감을 주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며 “뒤로 후퇴하지 않는 지속가능한 관계가 우리가 생각하는 남북관계의 발전이고 그 과정에서 시간이 걸리고 더디더라도 두려워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 격(格) 문제는 없지만 정상화의 길은 험로 예상

6월 12일 서울에서 열 예정이던 남북 장관급회담은 수석대표의 급(級)을 놓고 남북이 합의하지 못해 무산됐다. 하지만 이번 실무접촉에서 급 문제는 크게 부각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개성공단을 담당하는 서호 통일부 남북협력지구지원단장이 수석대표를 맡기로 했다. 북한에서 개성공단 전담기구는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이다. 총국장은 이금철이다. 하지만 이금철은 그동안 홍양호 개성공단관리위원장(전 통일부 차관)이 상대해 왔다.

이에 따라 북한은 이금철보다 한 급이 낮은 박철수 부총국장을 수석대표로 내보낸다고 통보했고 정부는 이를 수용하기로 했다. 정부 당국자는 “장관급회담 때도 수석대표가 반드시 장관급인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나와야 한다는 입장은 아니었다”며 실무접촉 대표의 급에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음을 밝혔다.

하지만 6일 실무회담에서 남북이 곧바로 합의점에 다다르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4일 한국이 실무접촉 의제로 제시한 것은 △개성공단 시설 및 장비 점검 △완제품 및 원·부자재 반출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 등 3가지다. 이 중 장비 점검과 물자 반출 문제는 입주 기업인의 방북이 이뤄지면 어느 정도 해결의 가닥을 잡을 수 있다. 관건은 개성공단 정상화다. 북한은 “개성공단은 달러박스”라는 언론보도 등을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이라며 공단 정상화에 앞서 해결해야 할 근본 문제로 주장하고 있다. 또 박근혜정부의 개성공단 발전 구상인 ‘해외기업 유치를 통한 국제화’도 비난 대상으로 삼고 있다.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지난달 13일 남북회담 무산의 책임을 남측에 돌리며 “당국회담에 털끝만 한 미련도 가지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남측 민간단체에 한국 정부 비난 여론전을 펼 것과 ‘중국에서 접촉하자’는 내용의 팩스를 보내는 등 ‘통민봉관(通民封官)’ 또는 ‘남남(南南)갈등’을 시도했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이번 회담이 개성공단 재가동에 이어 남북관계 진전으로 가기까지는 진행 단계마다 여러 고비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 남북이 회담 장소 ‘샅바싸움’ 하는 이유

북한이 회담 장소로 개성공단을 제의한 배경에는 ‘홈그라운드의 이점’을 살려 회담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협상전략 의도가 숨어 있었다. 통신 수단이 확보되지 않은 북측 지역에 남측 대표단을 불러들여 서울과 접촉을 차단한 채 ‘깜깜이 회담’으로 몰아갈 계산인 것이다. 개성공단에는 1300여 회선의 국제전화와 서울 직통 전화가 연결돼 있지만 5월 3일 체류인원이 전원 철수하면서 KT 요원들도 귀환했다.

이에 따라 지난 석 달 동안 통신장비들이 방치된 상태여서 회담일인 6일까지 정상 기능으로 복구될지 불투명하다. 수시로 서울과 교신하며 훈령(訓令)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통신수단을 확보하지 못한 한국 대표단은 수세적인 회담을 할 수밖에 없다. 북한이 ‘의표 찌르기’ 식으로 예상 밖의 제안을 할 경우 ‘되돌아가 논의한 뒤 답을 주겠다’는 궁색한 답변밖에는 내놓을 게 없다. 반면 판문점에는 남북회담을 위한 통신시설이 완비돼 있다.

또 개성으로 가려면 사전에 북한의 출입승인을 받아야 한다. 명단을 사전에 통보한 뒤 북한이 출입 동의를 해야 경기 파주시 도라산 남북출입사무소(CIQ)를 거쳐 북측 지역으로 넘어갈 수 있다. 남측 대표단이 개성공단을 다녀오면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에서 ‘왜 당국자는 되고 우리는 방북을 못하게 하느냐’는 항의 여론이 비등할 수 있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개성공단을 회담 장소로 고집하는 데는 남남갈등까지 노린 다각도의 전술이 숨어 있다고 본다. 그래서 그대로 수용할 수 없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조숭호·이정은 기자 sh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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