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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룸/김현진]노출의 역차별

입력 | 2013-07-05 03:00:00


김현진 산업부 기자

여름철에 ‘쿨비즈’ 차림을 허용한 지 2년째인 KT&G에선 반바지 차림으로 출근하는 직원들이 올해 더욱 늘었다. 요즘 많은 기업들이 시원한 비즈니스 패션이라는 뜻의 ‘쿨비즈’를 앞다퉈 도입하고 있다. 이 가운데 반바지는 쿨비즈 아이템 중에서도 ‘노출 수위’가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 올 들어 새롭게 ‘반바지족’에 합류한 사람들 가운데는 동료들의 옷입기를 통해 익힌 학습 효과 덕에 과감하게 반바지를 입게 된 경우가 많다. 반바지 차림에 늘 즐겨 입던 셔츠를 입거나 정장 구두를 매치하기는 어색한 탓에 남들이 입는 모습을 충분히 지켜 본 뒤에야 용기를 낸 것이다. 주요 패션업체에는 “반바지를 입고는 싶지만 어떻게 입어야 할지 모르는 평범한 아저씨들을 위해 반바지 입기와 관련된 강의를 해 달라”고 주문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남자들이 반바지를 선뜻 입지 못하는 데에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여러 명의 남성 직장인들과 얘기를 나누다 발견한 매우 원초적이고도 인간적인 고민…. 바로 다리에 난 털 때문이었다.

KT&G의 한 직원은 “실제로 다리털이 적은 사람들이 보다 편하게 반바지를 입는 편”이라며 “아직 남자들이 다리털을 제모하기는 익숙지 않다보니 털이 많은 사람은 아예 반바지 입기를 포기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젊은 남성들이 즐겨 찾는 온라인 사이트에서도 털에 대한 남성들의 관심과 고민이 집요하게 드러났다. 2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젊은 남성들은 주로 “남자들의 다리털, 여자들이 싫어하지 않을까요”라는 문답을 은밀히 주고받았다.

지난해 선구적으로 서울시청 공무원들에게 반바지를 허용한 박원순 서울시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박 시장은 당시 출입기자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사실 다리털 때문에 반바지를 직접 입는 건 좀 꺼려진다”고 말했다고 한다.

‘마초적 남성성’의 상징이었던 털이 부끄러운 존재로 전락했다니 털은 과연 비문명적 존재인 걸까. 체모의 문화사를 다룬 책 ‘털’을 쓴 역사학자 다니엘라 마이어는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체모 면도’라는 고문이 행해졌고, 이런 어려움을 감당해야 하는 쪽은 오로지 여성들이었다”고 말했다. 19세기 여성 해방 운동과 더불어 실제로 제모를 거부하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다. 여성도 당당하게 노출 패션을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되면서부터야 자발적인 제모가 다시 시작됐다는 점을 상기하면 여성의 털은 곧 권력이었다.

반대로 요즘 남자들이 반바지 하나 입는 걸 갖고 큰 결심을 해야 하다니 이게 웬 불평등한 처사일까.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마음의 무게만큼 몸을 옥죄었던 정장 탓에 퇴화된 패션 감각은 부단한 학습으로 극복할 수 있다. 털이 무슨 죄라도 되는 양 위축될 필요도 없다.

여자들도 노출 패션으로 과감히 여성성을 뽐내는 시대다. 이제야 소심하게 맨다리를 드러내기 시작한 남성들이 심리적인 ‘역차별’을 당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김현진 산업부 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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