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무라카미 하루키 지음/양억관 옮김/437쪽·1만4800원/민음사
기차역을 설계하는 엔지니어 쓰쿠루는 대학 시절 단짝 친구들에게 영문도 모른 채 절교당한 뒤 ‘향해야 할 장소’도 ‘돌아가야 할 장소’도 잃어버린 사람으로 살아간다. 그로부터 십여 년 만에 옛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떠나는 순례의 끝에서 그는 자신이 가야할 곳을 찾을 수 있을까?
쓰쿠루는 역사나 사회에 무심하고 내면으로 침잠하는 하루키 전작의 주인공과 연장선 위에 있다. 쓰쿠루가 한자로 ‘(무언가를) 만든다’는 의미의 ‘作(작)’인 걸 생각하면, ‘작가’ 하루키는 물론 세상 속에 작업물을 남기며 살아가는 모든 현대인의 초상이다.
‘사람의 마음과 마음은 조화만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상처와 상처로 깊이 연결된 것이다. 아픔과 아픔으로 나약함과 나약함으로 이어진다. 비통한 절규를 내포하지 않은 고요는 없으며 땅 위에 피 흘리지 않는 용서는 없고, 가슴 아픈 상실을 통과하지 않는 수용은 없다. 그것이 진정한 조화의 근저에 있는 것이다.’(363쪽)
가슴에 얼음처럼 박힌 상실의 아픔을 함께 녹일 ‘체온’에 대한 갈망은 하루키에게 전 세계적 인기를 가져다 준 ‘노르웨이의 숲(상실의 시대)’의 그것과 상당히 유사하지만 ‘색채가 없는…’에서는 보다 구체화됐다. ‘그 차가운 중심부를 스스로의 힘으로 조금씩 녹여 내야 한다.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 동토를 녹이기 위해서 쓰쿠루는 다른 누군가의 온기를 필요로 했다. 자신의 체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388쪽)
클래식 음악 작품과 요리에 대한 애정과 세밀한 묘사, 독자들을 열광케 하는 하루키 특유의 인생에 대한 ‘쿨’한 잠언들은 신작에서도 여전하다. 다만 고립된 ‘개인’에서 ‘관계’와 ‘소통’을 향해 느리지만 착실히 나아가려는 몸짓은 작가의 전작들보다 한결 또렷한 느낌이다. 헤아려 보니 하루키도 올해 나이 예순넷. 그도 어느덧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다.